선교문학: 추석과 가족 사진




• 추석과 가족사진

삶가운데 가족사진을 찍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아이들이 어려서 아빠 엄마 품에서 자랄때는 부모는 아이 키우느라 바쁘고 정신이 없고 현실적인 일들에 여념이 없어서 가족사진을 찍을 만한 마음에 여유가 없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자라서 공부하기 위해 부모곁을 떠나기 시작하면 가족사진을 찍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더욱이 가족중 누가 해외에 있기라도 하면 모두 모여서 가족 사진을 찍을 기회는 더더욱 희박해진다.

자녀들이 성장해 결혼해서 자신의 가정이 생기면 자신들이 부모가 되고 자신의 가정을 세워 가느라 바빠서 원부모를 찾아 보는 일도 상대적으로 어려워진다. 내리 사랑에 제자식 돌보느라 부모는 뒷전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도 가족 사진이 그리 많지는 않다. 특히 내가 삼남매를 키울때 가족사진을 많이 찍어 두지 못했다. 그런데 가족 사진이 중요한 이유는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의 모습이 변하기 때문에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가족사진을 꼭 찍어 두어야 한다.

지금도 나는 우리 아이들이 한참 자라날때 가족사진을 많이 남겨두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나의 막내딸이 백일때 가족 사진을 찍고는 그후 자녀들의 예쁜 성장과정이 담긴 가족 사진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선교지로 출발하기 직전 찍었던 가족 사진이 그나마 자녀들의 사춘기 시절을 보전하는 유일한 가족사진이다. 삼남매가 각각 중3, 중2, 초5가 되었을때 찍은 26년전 사진인데 지금도 우리집 거실에 걸려 있다.

그후 선교지에서 우리가 결혼 20주년을 맞게 되었을때 나는 가족사진을 찍어두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학이라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아들은 선교지에 들어와 있는 반면 남편은 일이 있어서 한국에 나가 있었으니 가족사진을 찍기가 또 어려웠다.

그런데도 절묘한 기회가 단하루 있었다. 아들은 내일이면 출국하는데, 남편은 아들이 출국하기 하루전에 선교지로 돌아왔기 때문에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단 하루의 시간이 있었다. 천우일우의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었다.

나는 미리 사진관에 예약을 해 놓고는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는 귀한 기회로 주어진 하루를 활용했다. 아침 일찍 가족 모두 사진관으로 가서 간단한 화장을 하고 기념이 될 사진을 오전 내내 찍었다. 그것도 중국전통복장과 여자는 드레스와 남자는 연미복으로 멋지게 치장을 하고서 말이다.

그 가족 사진은 두고 두고 우리 가족의 사랑을 받았다. 아들이 대학교1학년 큰딸이 고3 막내가 중3일때이다. 그리고 그후엔 또 기회가 없다가 언젠가 포항에서 대학을 다니던 자녀들을 방문했을때 포토샵에서 저렴하게 3만원 인가를 내고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쓰고보니 독자 여러분에게 내가 가족 사진 찍는데 한 맺힌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족이 한 자리에 점점 모이기 힘들어진다는 점에서 나는 가족이 모였을때 가족사진을 남겨 두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는 변함이 없다.

위에 계속 언급한 것처럼 대가족이 될수록 다 모이기가 힘들기 때문에 나는 이번 추석에 식구들이 모이면 가족사진을 꼭 찍어 보리라 하고 벼르고 있었다. 마침 경기도 주민을 상대로 무료가족사진 이벤트를 한다는 광고가 있기에 신청을 했다.

가족 사진을 찍어 주고 가족사진액자를 하나씩 주는 이벤트이다. 전에도 나는 이런 이벤트에 신청을 해서 가족사진을 한번 찍었던 기억이 있다. 첫외손녀 로아가 태어나서 첫돌이 지났을땐가 했을때였다.

가끔 어떤 집에 가보면 가족 모두 청바지에 흰셔츠를 입고 자연스럽게 찍어둔 가족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당시 그렇게도 그런 스타일의 가족 사진이 부러웠었다.
우리 가족도 저렇게 꼭 한번 찍어 보리라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마침내 그 소원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번 추석명절에 가족사진찍어주기 이벤트에 참여해서 가족사진을 찍자는나의 의견에 자녀들은 별로 호응하지 않는다. 구정때로 미루자는 것이다. 불과 몇 주 전에 있던 결혼식때 가족사진을 찍었는데 뭐하러 또 찍느냐는 것이다.

하긴 그랬다. 불과 석 주 전에 큰아들이 결혼식을 할때 양가 모두 가족 사진을 찍어 주기 때문에 우리 가족도 세 명의 손주들까지도 다 가족 사진을 찍었었다. 더욱이 화장도 예쁘게 하고 머리 손질에 한복까지 곱게 입고 찍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의 가족 사진을 찍고 싶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러나 명절밑이라 가족사진 찍어주는 이벤트를 하는 사진관에서도 시간이 여유롭지가 않았다. 자녀들이 모이는 시간대 역시 다달랐고 말이다.

내가 고민하자 아들이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삼각대 세우고 셀카로 가족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어요. 제가 찍어 볼께요.” 한다. 그런데 막상 가족들이 다 모이고 나니 밥을 해 먹여야 하고 손주들과 놀아줘야 하고 분주하기 이를데가 없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언제나 길은 있다. 추석 당일 아침 온가족이 모인 날에 아침을 먹고 나서 교회에 가서 추석 감사예배를 드리기로 하였다. 그래서 열식구가 출동해서 우리 교회로 가서 먼저 추석명절을 맞아 감사예배를 드렸다.

그리고나서 교회 로비에 세계지도가 있는곳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다. 아들이 삼각대를 설치해 놓고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와서 자리를 잡자 타이머가 작동되면서 사진이 찰칵 찍혔다.

어느듯 우리식구가 된 애견 루비까지 가족사진에 들어갔다. 루비가 며느리 품에 안겨서 얼굴은 안 보이고 뒷머리만 보이는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가 소원하던 ‘다같이 가족사진’은 찍은 것이다.

가족사진을 찍고 오분 거리에 있는 어머니를 돌보아 주고 있는 행복요양원으로 온가족이 어머니를 뵈러 갔다. 코로나 조심으로 멀찍이 휠체어에 앉아계신 어머니를 뵐 수 밖에 없었지만 손자 손녀와 이번에 결혼한 장손며느리까지 어머니는 다 보셨다.

수년전 가족 사진을 찍을때만해도 어머니는 건강하셔서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맨발로 멋진 포즈를 잡고 아들옆에 서서 가족 사진을 함께 찍으셨었는데… 지난 추억을 생각하니 나는 또 울컥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송강 정철 (1536-1593)​이 부모에게
못다한 효(孝)를 생각하며 지었던 유명한 시(诗)가 기억난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못할 일은 이 뿐인가 하노라”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건강 하실때 기력이 있으실때 맛난 음식도 부지런히 사 드리고 여행도 모시고 다녀야 한다. 효도는 반드시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수년전 어머니의 건강이 그래도 좋았을때 우리 부부는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여행을 42일 동안 한적이 있다. 두시간은 걸어야 하는 한림공원을 그 때 어머니는 다 걸어서 다닐만큼 건강 하셨다.

추석날을 맞아서 비록 사진관에 가서 찍지는 못했어도 핸드폰으로나마 가족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나는 매우 기뻤다. 기회는 언제나 오지 않는다. 우리 인생에서 가족 사진을 찍어 두는 것도,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도 기회가 주어질 때 해야 한다. 못하고 지나가면 후회로 남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전 9:11)


글/ 사진: 나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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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