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험준한 산맥과 열악한 교통 환경은 20세기 초 강원도 선교의 가장 큰 장벽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선교사들과 신앙인들의 헌신은 강원 지역에 복음과 근대 의료, 교육, 독립운동의 씨앗을 뿌렸다.
한국교회총연합은 지난 9~10일 강원도 일대에서 근대 선교 유산을 돌아보는 역사 답사를 진행하며 강원 지역 교회와 선교의 발자취를 조명했다.
1908년 강원 원주에 잠시 머물렀던 미국 선교사 아서 웰본은 본국에 보낸 편지에서 “강릉에 선교 지부를 세우려 했지만 왕래가 어려워 포기했다”고 기록했다. 당시 강릉 등 영동 지역은 태백산맥을 넘어야 하는 험한 길 때문에 선교 활동이 쉽지 않은 지역이었다.
이처럼 접근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선교사들과 권서인들의 노력으로 복음은 강원도 곳곳에 전해졌다. 특히 의료 선교와 교육 활동은 지역 사회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셔우드 홀 가문이 남긴 선교 유산
강원 고성 화진포 해변 절벽 위에는 ‘화진포의 성’이라 불리는 석조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1938년 선교사 휴양시설로 건립된 것으로, 캐나다 출신 미국 감리회 의료 선교사 셔우드 홀의 요청으로 지어졌다.
셔우드 홀은 평양에서 의료 선교를 펼치다 순직한 윌리엄 제임스 홀과 한국 최초 맹학교 설립과 한글 점자 보급에 헌신한 로제타 셔우드 홀 선교사의 아들로 한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일을 계기로 결핵 퇴치 사역에 헌신했다. 1928년에는 국내 최초의 근대식 결핵 요양원인 해주구세요양원을 세워 의료 선교의 새 길을 열었다.
현재 화진포의 성 인근에는 화진포 셔우드 홀 문화공간이 조성돼 셔우드 홀과 로제타 홀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기념하고 있다. 이곳에는 한국에서 작성한 일기와 편지, 초기 크리스마스 씰 등 다양한 역사 자료가 전시돼 있다.
김정석은 “홀 선교사 가족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시각장애인과 여성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복음을 삶으로 실천했다”며 “한국 교회사뿐 아니라 근대사에서도 귀중한 유산을 남긴 분들”이라고 평가했다.
의료 선교로 이어진 복음 사역
강원 지역 의료 선교의 흔적은 원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는 선교사 모리스의 사택이 남아 있으며 현재 의료사료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선교사들이 세운 서미감병원의 역사와 강원 지역 의료 선교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또한 춘천에서는 미국 남감리회 선교사들이 설립한 예수교병원이 지역 의료와 교회 사역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이 병원이 있던 건물은 현재 춘천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때 춘천중앙교회 예배당으로도 쓰였다.
신앙이 이끈 만세운동
강원 지역에서는 교회가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1919년 4월 4일 시작된 양양 만세운동에는 1만5천여 명이 참여했다. 이 운동의 중심 인물은 감리교 신앙 가정에서 자란 조화벽이었다. 그는 독립선언서를 숨겨 고향으로 가져와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조직했다.
강릉에서는 목회자 안경록이 교회 청년들과 함께 장날 태극기를 나누며 시위를 이끌었다.
교회사 연구자인 홍승표 목사는 “강원 지역의 고성, 양양, 강릉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3·1운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지역”이라며 “신앙이 민족의 미래를 향한 희망과 비전을 낳았다”고 말했다.
험준한 산맥에 가로막혀 늦게 복음이 전해졌지만, 선교사들과 신앙인들의 헌신은 강원 땅에 깊은 믿음의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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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라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