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약품비 지출이 최근 10여 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한 가운데, 처방 방식과 약가 구조를 개혁하면 연간 약제비의 절반 수준을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11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무상의료운동본부 등이 공동 개최한 토론회에서 나영균는 ‘대한민국 약제비 구조의 개혁 방안’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약품비 지출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 기준으로 국내 약품비는 2011년 13조1천억 원에서 2024년 27조 원으로 늘어 약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고령화 영향으로 노인 약품비 비중이 크게 확대됐다. 2024년 기준 노인 약품비는 전체의 51.7%를 차지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의 약제비 부담은 높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5’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약제비는 2023년 구매력평가 기준 969달러(약 142만 원)로, OECD 평균인 658달러보다 47.3% 높았다.
비슷한 경제 수준 국가와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같은 기준에서 영국은 521달러, 호주는 590달러 수준으로 한국보다 크게 낮았다.
나 교수는 “한국의 약제비 수준은 단순히 소득이나 의료 이용량 문제라기보다 약가 구조의 문제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은 의료비에서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은 편이다. 한국은 전체 국민 의료비의 20.5%가 약제비로 사용된다. 반면 미국은 1인당 약제비가 1천432달러로 한국보다 많지만 의료비 대비 비중은 11.5%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 중 하나로 제네릭 의약품 가격 구조를 지목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복제약 가격이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의 53.55% 수준으로 책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이 사실상 가격 인하 경쟁의 하한선으로 작용하면서 제약사 간 가격 경쟁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나 교수는 “한국의 제네릭 가격은 오리지널 약 대비 OECD 평균(약 25%)의 두 배 수준”이라며 “제네릭을 사용해도 재정 절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반면 주요 선진국에서는 제네릭이 시장에 진입할 때는 오리지널 약 대비 50~60%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되지만, 경쟁이 늘어나면 1년 이내에 가격이 10~20% 수준까지 떨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같은 구조의 배경에는 ‘상품명 처방’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에서는 의사가 특정 브랜드명으로 처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약사가 같은 성분의 더 저렴한 제네릭으로 바꾸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돼 있다. 실제로 국내 대체조제율은 0.79% 수준에 그친다.
나 교수는 “상품명 처방 관행과 고가의 제네릭, 세계 최고 수준의 외래진료 이용 등이 서로 맞물려 약제비의 구조적 비효율을 심화시키고 건강보험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세 가지 제도 개혁을 제안했다.
첫째는 의사가 특정 브랜드가 아니라 약의 성분으로 처방하는 ‘성분명 처방’ 의무화다.
둘째는 동일 성분 의약품의 가격 기준을 설정하는 ‘참조가격제’ 도입이다.
셋째는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경쟁 입찰 방식이다.
참조가격제는 동일 성분이나 치료 효과가 유사한 약품을 묶어 가장 낮은 가격의 약을 기준으로 보험 가격을 정하는 제도다. 환자가 더 비싼 약을 선택할 경우 차액을 본인이 부담하게 되기 때문에 제약사 간 가격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 교수는 “이 세 가지 제도를 종합적으로 도입하면 현재 약품비의 절반 수준인 약 13조5천억 원을 연간 절감할 수 있다”며 “대체조제 활성화와 리베이트 근절, 혁신 신약 도입 정책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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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진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