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평강교회 담임 박희정목사
그 사랑, 주님의 임재앞에서 작사, 곡
죽음이 두려운가?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죽음을 맞이할 때의 고통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제일 복된 죽음은 자다가 평온하게 가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매일 밤 죽음을 연습한다. ‘주님~, 오늘 이 밤이 마지막이라고 하신다면 내가 이렇게 자다가 깨어나지 못한다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부르시면 달려가겠습니다. 다만 우리 연약한 성도들과 자녀들을 기억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시고, 온전히 믿음 안에서 살게 하셔서 영원한 천국에서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지켜주십시오. 남들보다 좋은 집에서 못 살고 많은 연봉 못 받아도 늘 믿음 안에서 살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신령한 축복을 감추지 마시고 믿음의 신비와 날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 주십시오.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 은혜 누리게 해 주소서. 진짜 행복을 누리게 해 주소서~.’
이렇게 죽음을 연습하다(고전 15:31).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가까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자유함을 얻었다. 이제 그 죽음 때문에 한평생 종노릇 했던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의 종이 아니다. 우리는 부활의 씨앗을 품고 있으며 이미 영생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손이 되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여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같이 되셨다(히 2:17).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의 역할이 백성의 죄를 속량하고 하나님 앞에 영원한 샬롬으로 설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그 잃어버린 궁극적인 영원한 샬롬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얻을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진정한 평강, 이것이 우리가 누려야 할 샬롬이다(요 14:27).
이 모든 것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은 거짓 죽음이 아니며 종교 사기꾼들이 만들어낸 위장 죽음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역사적으로 진짜 죽으셨다. 마가복음 15장 39절에 나오는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지시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말했다. 이 로마의 백부장은 사형 집행 전문가이다. 백부장이 사형수가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를 확인하고 죽었다고 선언하면 그것은 법적인 효력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백부장은 예수님의 죽음을 법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법적으로, 역사적으로 죽으신 분이다.
지금도 병원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의사가 사망 선언한다. 날짜와 시간을 말하고 ‘죽었다.’라고 선언한다. 그 말이 법적인 근거가 된다.
마가복음 15장 44~45절에서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라고 확인까지 한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진짜 죽으셨다.
죽음과 공포는 ‘그 사랑’ 앞에서 멸시를 받았다. 그리하여 아버지 사랑의 임재는 십자가를 통해서 완성되고, 그 죽음의 분리는 부활로 인해서 더욱 강력한 연합으로 회복되고,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십자가를 믿고 따르는 우리는 그분과 영원히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신 성취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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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