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극복
누구나 한 번쯤 우울했던 기억이 있지 않으십니까?
이 세상에 나만 홀로 떨어진 것 같고,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이지요.
이렇게 우울한 마음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일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내가
우울증이 아닌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신체적 변화, 심리적 갈등, 사회적 변화 이 세 가지가 어느 한가지라도 흔들리게 되는,
즉 불균형을 이루면 우울증을 유발하게 된다고 합니다.
며칠 전 정말 심각한 우울증의 상황에 있다가 극복했던
한 친구를 만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너는 도대체 왜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니?”
저의 일차원적인 질문에 친구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나는 시련이 이유였어.”
4년간 만났던 사랑을 잃으면서 이 친구는 목숨까지 잃을 뻔했습니다.
두 번의 자살시도.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와 내 가족이 내 죽음에 슬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아픔과 괴로움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했습니다.
“마치 내 두 팔이 전기가 오는 것 같았고 물컵조차 주지 못할 정도로 힘이 없었어.
내 팔이 잘려 나가는게 이보다 더 고통스러울까? 이런 생각을 할 만큼 너무나 고통스러웠어.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때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은 엄마가 돌아가시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없을 거야.”
저 또한 우울증의 증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번 우울감에 빠지면 마치 소용돌이에 휩쓸린 듯이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마치 사방이 안개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 중 잠언 4장 23절 말씀이 있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울감은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자꾸만 갉아먹습니다.
포도원을 허는 여우처럼 야금야금 파들어 갑니다.
‘죽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듭니다.
조분조분 이야기하는 친구의 말에 또 다른 궁금증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어?”
“약을 먹어도 나는 낫질 않았고 잠을 자지 못하고 잘 먹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한 친구를 알게 되었어.”
안타깝게도 그 친구는 제가 원한 크리스천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헌신적으로 그녀를 도와주었습니다.
여행을 함께 다니고 다른 친구들과의 만남을 연결해 주고, 먹을 것을 챙겨주면서 헌신해 주었더군요.
정말 보기 드문 대단한 사람이다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 우울증에 5년간이나 빠져있던 그를 다시 살리는 계기였습니다.
“너는 정말 행운아였네.”
우울증에 빠진 많은사람들은 옆에 사람을 두기가 힘이 듭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마치 블랙홀 같아서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를 빨아들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굉장한 감정의 소모를 하게 되죠.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떨어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우울증에 걸린 본인도‘사람들은 내 사정에 관심이 없을 거야. 날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점점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론을 내게 되겠지요. ‘죽을 만큼 힘든데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저의 경우는 제가 크리스천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저의 아픔을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정답을 말할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자.”
이것은 이미 저 자신도 알고 있는 정답입니다.
그렇지만 그 해답을 듣고, 그 해답을 알고 있어도 우울감을 이기지 못하여 실행하기가 힘듭니다.
너무 고리타분한 대답인 것 같았습니다.
‘당신이 내 마음을 알아? 네가 이렇게 아파도 기도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반발감이 생길 뿐입니다. 저 또한 너무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저는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과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요한복음 4:16~19)
이 수가성의 여인은 얼마나 아프게 살아왔을까요?
남들에게 손가락질받고 고통과 외로움을 갖고 있진 않았을까요?
그런 그녀를 예수님께서 알아주십니다.
그런 그녀를 예수님께서 이해해주십니다.
아마도 이 수가성의 여인은 예수님으로 인해 그 순간에 생수를 마신 듯 가슴이 뻥 뚫렸을 것입니다.
그녀는 곧바로 선자자 이심을 인정하고 예배자의 길로 돌아섰습니다.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 아무런 이유 없이 받아주고 안아주는 것,
저는 이것이 우울증을 극복하는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혼자였던 아담을 위해서 하와를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던 것은 혼자서는 안되는
어떠한 상황을 이길 힘을 주신 것은 아닐까요?
우울증은 혼자의 힘으로 이겨내기가 너무나 힘든 질병입니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우울증의 증세를 가지고도‘그냥 단순한 슬픔이야.’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이런 증상을 우울증의 일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욥의 세 친구들처럼“예수님이 너와 함께 계시는데 외롭다고 하는 것은 죄악이야.”
“네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마귀가 틈을 타고 들어 온거야.”
“일단 네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하나님께 회개해 보자.” 이런 말들이 정답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을 더 막아버리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2021년 미국에서는 약 1600만 명이 적어도 한 가지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리 주위에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갈비뼈인 것처럼 돌봐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누군가를 살리는 구원의 길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문제를 귀히 여기고 아픔을 공감하며 나누고 싶습니다.
고통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당신!
우리 손을 내미는 것이 누군가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오늘부터라도 손 내밀 수 있는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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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봉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