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 분당 새순교회 담임 김대광목사
똑같은 책이나 드라마 혹은 스포츠 경기를 볼 때, 사람마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스포츠 같은 경우는 해설자가 특정 관전 포인트로 그날의 경기를 보라고 제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세상의 문화나 역사는 사람마다 그것을 보는 다양한 관전 포인트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관전 포인트를 서로서로 인정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성경을 볼 때는 다르다.
성경이나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때는 분명한 원칙이 존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때론 그들을 보며 도전도 받고 상대적인 부러움도 느끼게 된다. 이런 일은 성경 속 인물들을 보면서도 나타난다.
성경의 인물 중 모두가 잘 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있다.
아브라함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장면은 바로 이삭을 모리아산 에서 바치는 사건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절정에 이르는 이 사건은 믿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나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좋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자식까지 바칠 수 있었을까?’, ‘정말 아브라함 대단하다. 부럽다’ 등의 마음을 갖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대단하게 보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을 아브라함의 행동을 중심으로 보지 않고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어떻게 될까? 과연 진정한 모리아산 사건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
엄마가 아이에게 용돈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는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켰고 용돈을 주었다. 엄마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아이에게 용돈을 주려고 심부름을 시킨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대부분의 아이는 심부름을 시킨 엄마의 의도나 마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용돈을 심부름을 해서 받은 결과물로만 생각한다.
아이에 입장에서 보면 용돈은 심부름에 따른 당연한 대가로 볼 수 있지만 그렇게만 볼 때 큰 오류가 남는 문제가 생긴다. 용돈을 행동에 대한 보상이라는 관점으로 보는 아이는 더 중요한 엄마의 마음은 알지 못하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심부름을 한 행동에 대한 자신의 ‘의’가 쌓이게 되고, 결국 나중에는 엄마의 사랑도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엄마가 사랑으로 주는 모든 것들을 그저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엄마의 사랑은 없고 자신의 ‘의’와 ‘용돈’만 남게 된 것이다.
다시 모리아산 으로 돌아가 보자.
이번에는 아브라함의 순종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이 중심이 되어 이 사건을 바라보자.
하나님이 초점이 되어 사건을 다시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려고 이삭을 요구하신 것을 알게 된다. 이제까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당신 스스로를 오픈하여 주셨다. 만약 이것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 수도 신뢰 할 수도 없었고, 신뢰가 없다면 순종에 이를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계시하여 주셨고 그로 인해 아브라함은 이삭을 요구하시는 그분 앞에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알아 순종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 사건을 보게 되면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의 행동이 대단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아브라함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대단해 보이게 된다.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그렇게 인도하시고 조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이렇게 성경을 본다면 자신이 부족하거나 상대적으로 남보다 못한 믿음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사람이 대단해 보여 위축되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높이거나 사람 위에 군림 하려 하지도 않게 되며 하나님만이 위대하시며 그 안에서 다 동일한 형제의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우리가 대단함을 느껴야 하는 대상은 오직 한분 하나님 이외에는 없다. 성경에 등장하는 어떠한 훌륭한 선진들도 우리가 대단히 여길 대상이 아니며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만이 위대하심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기독교는 어느 순간 하나님을 중심으로 성경을 보던 것에서 벗어나 사람의 행위나 결과를 중심으로 성경을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신앙생활을 강요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은 인본주의가 중심이 된 메시지나 행동에 더 자극을 받는다. 그럴수록 우리는 은혜 중심, 복음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고 있다.
모든 것의 회복은 하나님 중심, 은혜 중심, 복음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삶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우리의 관전 포인트를 하나님 중심으로 맞추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는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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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