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보석을 낳은 왕보석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나은혜 목사

큰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큰애 로아가 학교 보건실에 누워 있다고 연락이 와서 데리러 가야 하는데 아이들 둘이 집에 있으니 엄마가 로아를 좀 데려다 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서도 10분여 거리라서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아픈 손녀를 생각해서 차를 가지고 학교에 갔다.

둘째 로이가 수족구가 걸리더니 병을 옮겼는지 막내 조이도 어린이집에 못 보내고 집에 있었다. 그러더니 학교에 간 큰애 로아도 열이나서 데리러 가게 된 것이다. 딸하나 아들 둘, 이렇게 삼남매를 키우고 있는 큰딸은 늘 이처럼 일이 많다.

남편은 원래 은퇴하면 대구로 와서 세아이를 키우는 딸을 돕고 싶어 했다. 아마도 남편이 기도를 세게 한 모양이다. 남편의 그 소망이 이루어져서 우리는 아예 대구로 이사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덕분에 매 주 대구와 사역지가 있는 김포를 오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차를 가지고 로아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가서 아픈 아이를 데리고 딸네집으로 왔다. 로아를 딸네집에 데려다 주고 집에 오려는데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하는것 같아서 딸네집 근처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보냈다.

아이들은 아픈것도 잠시 잊고 신나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집에 돌아와서 딸네집에서 아이들과 딸과 찍은 사진을 보았다. 활짝 웃고 있는 사진속 아이들은 전혀 아픈 아이들 같지도 않다. 제엄마에게 나란히 붙어 있는 딸의 세아이를 보고 있자니 문득 내가 세 아이를 키우던 때가 겹쳐져서 생각이 났다. 나는 아들하나에 딸 둘을 낳아서 키웠다.


나는 문득 ‘세개의 보석’인 세아이를 낳은 딸은 이제 ‘왕보석’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유난히 내 얼굴을 많이 닮은 큰딸인데, 자녀를 낳는 것도 엄마인 나를 닮아서 똑같이 셋을 낳았다. 아니 언젠가 큰딸은 하나님이 아이를 더 주시면 더 낳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 아이가 넷이 된다. ‘네개의 보석’이 되는 것이다. 결혼은 해도 자녀는 안 낳으려는 딩크족들이 많은 요즘이니, 딸이 아이넷을 낳으면 큰 애국자가 되는 것이다.

얼마전에 신문을 보니까 코레일에서 아이둘이 있는 가정은 KTX 요금을 30% 할인을 해 주지만 아이셋이 있는 다자녀 가정은 KTX요금을 50% 할인해 준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것도 주중 주말 관계없이 말이다. 아이들 데리고 부담없이 여행도 하고 외출도 하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은 불과 30여년 만에 이렇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내가 셋째를 낳던 1980년대는 셋째아이서부터는 아예 의료보험 혜택도 주지 않고 직장에서 주는 자녀대학 장학금도 둘째까지만 주고 셋째는 주지않는 정책을 써서 가능한 출산을 많이 하지 말라는 정부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야만인 소리를 들어가며 당당하게 셋째아이를 낳았고 세 아이를 열심히 길렀다. 그렇게 키운 큰딸이 세자녀 가운데 가장 먼저 결혼하게 되었을때 나는 ‘세개의 보석’이란 제목의 책을 출판했었다. 그러니까 2007년 5월 이었다. 그해 5월에 결혼식을 올린 큰딸의 결혼을 기념하고자 나는 ‘세개의보석’을 출간 하였다.

책의 내용은 일 년 동안 나의 세자녀에게 인터넷으로 보낸 ‘엄마의 편지’ 이다. 당시 나는 선교지에서 살고 있었고 나의 세 자녀는 선교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셋 다 한국으로 대학진학을 했다. 세아이 모두 한동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곁에 없는 자녀들을 그리워 하면서 매 주 긴편지를 이메일로 써 보냈는데 그 원고가 일년반이 모여지자 한권의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책 제목을 ‘엄마의 편지’라고 하면 좀 식상해 보였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세 자녀이니까 ‘세개의 보석’이라고 책제목을 지었다. 엄마에게 있어서 자녀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래서 왕왕 자녀를 위해서라면 생명을 내놓는 엄마의 이야기가 세상에는 회자되곤 한다.

불이난 집에서 화염속에서 자녀는 구하고 엄마는 불구가 되어 평생을 살아가는 엄마 이야기도 있고, 추운겨울 전쟁중에 엄동설한에 길에서 아기를 낳아 자신의 옷을 다벗어 아기를 덮어 주어 아기는 살리고 엄마는 얼어 죽은 이야기도 실화이다.

한국전쟁때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응애~ 응애~우는 갓난아기 울음 소리가 들려 미군이 가까이 가보니 벌거벗은 여인은 얼어서 죽어 있고 죽어가면서 옷을 다 벗어 싸고 또 싸서 품에 안고 있던 아기는 살아 있었다. 미군은 죽은 여인을 잘 묻어주고 아기를 미국으로 데려가서 입양하여 잘키웠다. 아이가 성년이 되었을때 양부모는 아이에게 친엄마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아이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나왔고 양부가 가르쳐준 친엄마의 무덤을 찾아갔다.

죽은여인이 자신의 생명을 맞바꾸어 살려낸 아들이 수십년 만에 엄마의 무덤을 찾아온 것이다. 아들이 엄마의 무덤을 찾은 때는 겨울이어서 매우 추울때였는데 아들은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부터 속옷까지 하나 하나 벗어서 엄마의 무덤에 덮기 시작했다. “엄마 그때 얼마나 추우셨어요 제가 이제 따뜻하게 엄마를 덮어 드릴께요” 아들은 엉엉 울면서 엄마의 무덤을 자신의 옷으로 덮어 주었다. 함께 온 당시 미군이었던 양아버지의 눈에서도 눈물이 쉬임없이 흘러 내렸다.

아들이야 당시 아기였으니 기억이 없겠지만 미군이었던 양부의 기억에는 또렷이 아기를 살리려고 옷을 다 벗은채 아기만을 끌어 안고 죽어 있던 숭고한 여인의 모습이 또렷이 기억의 뇌리에서 되살아나고 있었을것이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이러한 숭고한 사랑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점의 사랑이다. 오죽하면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해외토픽에서 보았는데 실제로 차에 깔린 자식을 구하기 위해서 어머니가 차체를 들어 올리는 초능력을 발휘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무튼 생명을 걸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어머니는 한번의 희생과 헌신이 아니라 수많은 일을 한다. 어머니의 손이 닿지 않고 아이는 생존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버이날 노래 가사에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닳도록 고생하시네”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녀를 키워내느라 애쓴 그런 부모의 수고를 부모는 기억하나 자녀들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것을기억하는 인간은 이세상에 하나도 없다. 다만 부모의 기억속에만 아이를 낳을때 어땠는지 키울때 어떤 애로가 있었는지를 기억할 뿐이다.

큰딸네집에 가보면 아이들의 옷을 빨아서 건조시켜 수북히 쌓아논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세탁기가 빨아주고 건조기가 빨래를 말려주지만 그것을 접어서 서랍에 정리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딸네 집에 가서 건조한 빨래가 쌓여져 있으면 접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도와 주려고 말이다.

세아이들의 옷을 접으면서 나는 생각하곤 한다. 큰딸의 세아이들도 이처럼 제 엄마가 입은 옷을 세탁하고 말려서 접어서 두었다가 다시 꺼내어 깨끗한 옷을 입혀 주는 매일같이 하는 똑같은 이 수고를 다 자란 후에 기억하지 못하겠지. 사실 빨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가 셋쯤 되면 먹는것도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셋을 낳고서 큰딸은 요리솜씨가 아주 수준급으로 좋아졌다. 웬만한건 다 집에서 만들어 먹인다 케이크도 굽고 과자도 구어서 먹인다. 나도 세 아이를 키울때 외식을 안하려고 돈가스도 오므라이스도 잡채밥도 자장면도 다 집에서 만들어 먹였었다. 다 사먹일려면 생활비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아무튼 귀하고 귀한 ‘세개의 보석’을 낳은큰딸은 이제 ‘왕보석’이 되었다. 남편과 나는 왕보석 큰딸의 일손을 덜어 주려고 노력한다. ‘세개의 보석’인 세 손주의 할아버지인 남편은 저녁식사 후에 아이셋의 이빨을 닦는 일을 기쁨으로 도맡고 있다. 우리의 도움으로 큰딸 왕보석이 더 반짝 반짝 빛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글/ 사진: 나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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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