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나은혜 목사
이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생일이 있다. 어머니로 부터 응애~ 하고 태어나면서부터 한사람의 존재가 이 지구촌 세상에서 드디어 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 친지들은 매 년 그가 혹은 그녀가 태어난 날을 기뻐하며 기념해준다.
어릴때는 가족이나 친지들의 축하를 주로 받게 되지만 나이가 들고 자라면 주로 주변 친구들의 축하를 더불어 많이 받게 된다.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에서, 학교에 들어가면 집에서 혹은 전문적인 생일파티 장소를 예약하여 친구들을 불러 축하 해 주기도 한다.
생일파티를 열어주고 생일맞은 당사자에게 예쁜 고깔모자를 씌워주고 선물을 주고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축하노래를 불러준다. “생일 축하합니다 ~Happy birthday to you~ 祝你生日快乐~”
우리 집은 보통 한국어,영어, 중국어 이렇게 3개국어로 생일축하노래를 풍성하게 불러준다. 그래서 자칫하면 생일 케이크에
꼿은 초가 녹아내려 케이크에 촛농이 떨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매우 빠른 속도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야한다.
올 1월달에 재작년에 나의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가 우리집에 시집와서 두번째로 생일을 맞았다. 작년에는 우리 가족이 김포에 살고 있었기에 마침 집에 온 아들과 며느리에게 내가 생일상을 차려주고 따뜻한 하얀 패딩조끼를 선물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올해 우리 며느리의 생일은 공교롭게도 주일날 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들 며느리와 딸가족이 사는 대구에 살고는 있지만 주말엔 사역을 하러 김포로 올라와야 하니 생일날을 함께 보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역을 다녀온 후 월요일날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렇게 약속을 해놓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 며느리를 낳고 곱게 길러서 내아들에게 시집보내준 사돈권사님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며느리의 생일날을 맞기 전에 사돈권사님에게 귀한 딸을 낳고 길러주신 감사의 표시를 먼저 하는게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모양도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화과자 한상자를 사돈에게 택배로 보내 드렸다.
그런데 생일축하도 집집마다의 문화인것 같다. 나는 친정에서 가족의 생일을 잘 챙겨주는 분위기속에서 자랐다. 특별히 집안의 어른이신 할아버지나 할머니의생신날은 생신상을 가득 차리고 손님들을 초대하곤 하였다.
그런 문화에서 자란 나는 26살에 결혼해서 첫번째 맞은 시부모님 생신날 생신상을 차려 드렸다. 시부모님은 서울에서 살고 계시고 우리 가족은 청주에서 살고 있었지만 매년 시부모님 생신때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나는 손수 음식을 만들어서 생신상을 차려 드렸다.
그러나 반대로 결혼생활을 수십년 하는 동안 내 생일을 시댁식구들로 부터 축하받아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심지어 남편도 나이들어서는 달라졌지만 젊었을때는 별로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아 섭섭해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결혼생활 수십년이 지난후 나중에야 남편을 통해 알게된 사실은 남편의 집안에선 원래 가족의 생일이나 졸업식이나 그런 기념일들을 별로 안챙겨주는 문화라는 것이다. 아… 어쩌면 두 집안의 문화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그것을 모르는 나는 그동안 온갖것을 챙기느라 동분서주 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늦깍이로 대학을 졸업한 손아래 시누이가 경주에 있는 한 대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을때 나는 청주에서 경주까지 자동차를 렌트해서 온가족을 이끌고 축하해주러 갔다.
시누이의 졸업식 날은 진눈개비가 내렸다. 날이 몹시 추웠고 안좋았기에 따끈한 설렁탕을 점심으로 먹으면서 축하해 주었다. 그 외에도 시아버님 칠순잔치며 시댁의 기념일을 꼬박 꼬박 챙기며 살았다.
그러다가 우리가족이 선교사로 파송되어 떠나자 챙길래야 챙길 수 없게되어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내가 신앙적으로나 인간의도리상 좋은 것이고 옳다고 여기는 것은 가능한 최선을 다해서 지키려는 자세로 살아왔다.
그런데 내 나이가 들면서 나는 생일에는 두명의 주인공이 있다는 자각을 하게되었다. 생일을 맞은 당사자를 이세상에 있도록 한 한사람말이다. 바로 생일당사자를 낳아준 그 어머니를 기억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남편의 생일에도 시어머님에게 먼저 감사하고 사례하곤 했다. “어머니, 애비를 낳고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있는것은 다 어머니 덕분입니다.“ 어머니는 그런말을 들으실때마다 쑥스러워 하시면서도 기분좋아 하셨었다.
그동안 나는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을 며느리로 보내달라고 수년간 기도했었다. 그렇게 얻은 귀한 우리 며느리 생일을 맞아서 조촐하지만 내 손으로 미역국이라도 끓여 주고 싶었다.
월요일 저녁 아들과 며느리가 퇴근하고 왔다. 좀 늦은 저녁이었지만 내가 차린 밥상으로 함께 밥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식구(食口)란 함께 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가족끼리 함께 밥을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정도 더 두터워진다.
결혼 2년차인 우리 며느리에게 시댁은 생일밥상을 서로 차려주는 따뜻한 문화가 있는 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내가 겪었던 며느리홀대시대는 이제 지나갔으니까 말이다. 서로 챙겨주고 섬기는 따뜻한 신앙안에서의 가족문화로 가족애가 더욱 두터워지기를 소망해본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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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