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나은혜 목사
“아버님 어머님, 저희는 방금 대구에 잘 도착했습니다. 지난 (장례를모신)3일 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할머니를 돌보시고 아름다운 천국 환송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오셨는지 그 정성과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과 칭찬이 함께하는 편안한 밤 되세요.”
나의 큰사위가 우리어머니 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간 후 보내온 문자이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소천 하신후, 상을 당하면 다 그렇듯이 정신없이 삼일이 지나갔다. 어머니는 어쩌면 평소의 얌전하신 모습처럼 그리도 조용하게 이땅을 떠나가셨다.
우리 부부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좀 쉬려고 하는데 어머니 계시는 요양원 원장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빨리좀 오셔야 겠어요.” 전화를 받자 마자 남편과 나는 한달음에 요양원으로 달려갔다. 걸어가도 6~7분 걸리는 거리였지만 혹 필요할것 같아서 우리는 차를 타고 갔다.
어머니께서 아침도 잘 드셨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것이다. 수간호사 출신의 원장님은 청진기를 귀에 꼿고 어머니의 가슴에
대었다. 심장은 아직 약하게 뛰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천국으로 떠나시려는 것이다. 우리는 곧 찬송을 부름으로서 어머니의 천국환송을 위한 임종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임종예배를 마치자 약하게 뛰던 어머니의 심장은 멈추고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셨다. 원장님은 이곳에 계신 어르신들 대부분이 병원으로 가서 임종을 맞는다고 했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원장님의 집이면서 동시에 요양원이기도 한 이곳 70평 아파트 거실에서 편안하게 숨을 거두신 것이다.
사실 남편과 나는 어머니가 코로나로 쓰러지신 직후인 작년 4월부터 장례준비를 시작 했었다. 어머니의 상태가 매우 위급했었기 때문이다. 먼저 집에서 멀지 않은 전문장례식장인 쉴낙원을 예약해 두었다. 쉴낙원은 우리가 사는 집에서 가깝기도 했고 병원 장례식장보다는 환경이 훨씬 쾌적했다.
김포엔 화장장이 없어서 인천의 가족공원에 있는 화장장도 미리 알아 보았다. 그리고 장지가 될 김포시립 봉안당인 ‘무지개뜨는 언덕’을 미리 가서 알아 보고 상담했다. 어머니를 장례지내고 나서 오래전 돌아 가셔서 용미리 봉안담에 있는 시아버님의 유골함도 모셔와서 함께 안치하려고 부부단을 알아보았다.
이처럼 철저한 준비를 해 두고서도 우리 부부는 매일밤 기도회를 할때마다 어머니의 생명을 올 8월까지만 연장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왜냐하면 남편의 막내동생이자 선교사인 시누이가 7월에 한국에 들어 오는데 한달간만 이라도 어머니와 같이 보내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다. 사랑하는 어머니는 복사꽃과 목련이 피었다가 지고 이제 빨강, 하양, 다홍, 분홍빛 고운 색색의 철쭉과 진달래가 무리 지어 활짝 피어나는 4월13일 아침에 이땅에서 94년의 소풍을 마치시고 본향인 천국으로 떠나셨다.
요양원 원장님인 김집사님이 우리대신 얼른 ‘더이지라이프’라는 기독교연합상조회를 연결하여 주었다. 앰불런스가 와서 어머니의 시신을 모시고 가고 우리가 탄 자동차가 뒤를 따랐다. 쉴낙원으로 가서 이제 장례절차를 따라 빈소를 차려야 한다.
쉴낙원에는 76평짜리 빈소가 있었지만 이미 다 사용되고 있었다. 우리가 갔을때는 100평짜리 특실만이 몇 개 남아 있었다. 비용이 더불이라서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마지막 어머니의 가시는 길에 문상을 올 가족과 손님들이 쾌적하게 보내도록 특실6호에 빈소를 차리기로 했다.
빈소가 특실이어서 화장실과 샤워실이 달린 가족실이 두개나 있었다. 접대실도 입식과 좌식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어린 아이들이 와서 지내도 좋은 구조였다. 외손주들이 분명히 올테니 잘한 선택이었다. CJ에서 주문해 제공하는 음식도 매우 깔끔하고 맛있었다.
지방과 해외에 있던 자녀손들이 속속들어오고 어머니의 장례절차는 진행되어졌다. 빈소의 꽃장식이 좀 약한듯해서 나는 ‘지은나교회’와 ‘지구촌선교문학선교회’이름으로 하얀국화꽃바구니를 양쪽에 하나씩 놓았다.
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장례식을 풍성한 꽃들속에서 치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꽃바구니와 화환들이 30개 가까이 많이 들어와서 꽃이 좀 빈약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내 생각은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장례절차에서 가장 아름다웠던것은 ‘입관예식’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어머니를 천국에 보내드릴때 평소 입으시던 옷을 입혀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내 드리려 생각하고 있었다.
한복을 입혀 드릴까도 생각했지만 내가 시집온 첫해 어머니에게 생신 선물로 해 드렸던 그레이색상의 주름치마와 흰색과회색의 장미무늬 리본 블라우스, 그리고 막내딸 결혼식때 사드렸던 쟈켓을 입혀 드렸다.
보통 일반 입관예식때는 가족들은 유리창너머로 고인의 수세장면을 보면서 오열하게된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모든 수세를 마치고 화장까지 곱게 하시고 평상복을 자연스럽게 입고 온갖 색색의 화사한 생화꽃속에 둘러 쌓여서 나무관속에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 계셨다.
어머니의 입관예식을 인도하는 사람은 여성으로 상조회 팀장님이었다. 곤색의 제복을 깔끔하게 입은 팀장님은 가족 모두를 유리창 너머가 아닌 입관실 안으로 들어오게했다. 가족들은 생전의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치장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장례지도사의 멘트에 따라 가족들이 고인의 몸을 만져보며 고별을 하게 했다. 나도 어머니의 이마와 볼을 만져드리고 살짝 입을 맞추어 드렸다. 어머니는 고인인데도 피부가 얼마나 고우신지 미인은 죽어서도 미인인 모양이다.
어머니의 신체를 한번씩 터치하면서 가족들이 고별을 하자, 이번에는 가족수대로 미리 준비된 카네이션 생화꽃코지를 어머니에게 하나씩 바치도록 인도했다. 곧 어버이날인데 어버이날을 맞지 못하고 소천하신 어머니에게 자녀들이 바치는 마지막 카네이션인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시신을 곱게 접은 12개의고깔로 하나 하나 덮어 드렸다. 12개의 흰색과 핑크색의 고운 꼬깔을 몸에 얹어 드린 것이다. 장례지도사의 설명에 의하면(첩지또는 고깔이라고 하며 전통 매장으로 모실때 대렴으로 염을 할때 마디마디 묶고 매어들릴때 장식으로 올리면서 매질을 하고 그 사이사이 노자도 올려드리고 편지도 써서 같이 모셨다고 함)
마지막으로 십자가가 그려진 하얀 천으로 시신을 덮고 관을 덮은후 나무관에 펜으로 어머니에게 마지막 말을 쓰고 싶은 사람은쓰라고 하였다. 상주인 남편에게는 나무관에 어머니의 성함을 쓰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 많이 많이사랑해요.” 라고 썼다.
남편이 속한 평북노회 서부시찰에서 입관예배와 발인예배를 드려 주기로 하였다. 이튿날 발인예배를 마치고 어머니를 모신 관을 포드사의 고급자동차인 길다란 링컨자동차에 모셨다. 어머니를 마지막 보내드리면서 최선의 예우를 해 드리고 싶었다.
남북통일이 되면 이북 함흥이 고향인 어머니를 내가 운전하는 새자동차에 모시고 함흥에 가려고 생각하고 종종 어머니에게도 말씀 드리곤 했었다. 이제 그 꿈은 이루어질수 없지만 어머니 가시는 마지막 길을 제일 좋다는 고급자동차에 모셔 드리고 싶었다.
인천 화장장으로 가서 화장을 하는동안 함께간 가족들과 친지들을 잘 대접하기 위해
미리 식당을 알아보았다. 화장장에도 식당과카페가 있었지만 버스를 타고 나가서 유명하다는 왕갈비탕집엘 갔다. 과연 오랜전통이 있는 집답게 왕갈비탕은 맛있었다.
어머니의 유골함을 모시고 다시 김포에 있는 ‘무지개뜨는언덕’이라는 시립봉안당으로 와서 안치해 드리고 목사인 남편이 기도함으로 모든 장례일정을 마쳤다. 어머니를 모신 봉안당은 김포의 애국자들을 기념하는 현충탑 바로 옆에 있었다. 그리고 바로앞은 아름다운 김포호수공원이 있다.
어머니께서 소천하신지 오늘로 꼭 한달째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자동차를 운전해서도 갔지만 지하철을 이용해서도 몇번 봉안당에 다녀왔다. 용미리에 있는 시아버님의 유골함을 반환받아 ‘무지개뜨는언덕’에 시어머님과 나란히 있게 해 드렸다.
나는 꽃다운 스물다섯살에 장남에게 시집가면서 시부모님을 잘 모시고 시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칭찬받는 며느리가 되고 싶었었다. 사실 어머니는 차남과 살고 싶어 하셨지만 내기도가 더 세었는지 어머니를 맏며느리인 내가 모셨으니 결혼할때 가졌던 내 꿈은 이제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어머니께서 소천하시던날 우리 부부는 당장 장례비 걱정이 앞섰었다. 하는수 없이 평소 신뢰하던 지인 목사님에게 500만원을 빌려 놓고서 장례진행을 했었는데 하나님께서 장례비용을 다 채워 주심으로서 어머니의 천국환송잔치는 잘 마무리 되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저작권자 ⓒ 크리스천매거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송혜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