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나은혜 목사

벌써 39년전의 일이다. 두 달여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박목사님께서 천국으로 떠나셨다. 향년 50세 였다. 성도들은 슬퍼하고 또 슬퍼 하였다. 우리교회는 4가정으로 시작된 개척교회가 짧은시간(3년 안에) 부흥하여 250명 정도 모이는 교회였다. 나는 개척하는 날부터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갔다.
우리교회 각 성도의 마음에 목사님은 진정한 목자였다. 영적 지도자를 잃은 성도들의 상실감은 각자 달랐지만 목사님을 따랐던 많은 성도들이 이제 어떻게 사느냐면서 통곡을 했다. 개척교회인 우리교회는 초신자가 많았고 그런 만큼 성도들은 목사님을 영적으로 의지하였다.
그런데 정작 목사님을 위해 두 달 여를 철야기도 하면서 기도했던 몇몇의성도들은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기도 중에 우리는 박목사님을 하나님께서 데려 가신다는것을 알려 주셨다. 그리고 우리교회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음성도 들었기에 평안 할 수 있었다. 성령님께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목사님께서 돌아 가시면서 앞으로 닥칠 큰 슬픔을 감당 할 수 있는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목사님의 장례식은 마치 시장님의 장례식이라도 된 듯이 경건하고 정중하게 치러졌다. 목사님을 존경하던 많은 분들이 전국 각지에서 왔다. 당시는 병원 장례식장이 없을때여서 환자가 임종을 할 때는 집으로 환자를 데려가서 임종을 맞게 할 때였다. 목사님의 임종을 앞두게되자, 우리 교회의 장로님들은 목사님을 댁으로 모시고 가야 한다고 하였다.
목사님의 마지막 임종이 가깝다는 소식을 듣고 매일 철야하며 기도하던 우리 기도팀도 병원을 심방해서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였다. 그런데 기도 중에 성령님께서 나에게 알려주시기를 목사님을 교회로 모시고 가라는 것이다. 나는 나를 아껴 주시던 여선교회 회장이신 권사님께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교회로 모시고 가라고 하셨다고 말씀 드렸다. 장로님들은 당시 나이 어린 여집사인 나의 말을 못마땅 하게 여기는 눈치였지만, 여선교회 총회장인 권사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의 말을 듣자고 설득하여 목사님을 모시고 교회로 왔다.
목사님은 사람들에 의해 이불에 싸이신 채로 당신이 말씀을 전하시고 성도들을 축복하시던 강대상과 교회를 둘러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쇠잔한 손으로 사모님의 손을 잡으시곤 차마 손을 놓지 못하시더니 정신을 잃으셨다. 이층이 대 예배실, 삼층을 교육관으로 쓰던 우리 교회였는데 삼층에 방을 마련하고 목사님을 모셨다. 얼마후 장로님들과 재직들이 방을 나오면서 목사님이 방금 임종하셨다고 알려 주었다. 교회에 모여 있던 성도들이 여기 저기서 울음과 통곡을 터뜨렸다.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왜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교회로 모시고 가라고 하셨는지를 알게 되었다. 계속하여 몰려 오는 문상객들은 이층 예배당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3층으로 가서 문상을 하도록 했다. 만약 장례를 25평 아파트인 목사님 댁에서 하려고 했으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었다. 300~350명이상의 사람들이 문상을 다녀갔는데 교회에서 했기에 예배당에서 사람들은 기다리면서 기도를 하기도 했고 서로 대화도 나누었다. 그래서 교회서는 질서 있게 문상객을 받을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복중에 하나가 바로 고) 박로홍 목사님과의 만남이었다고 나는 지금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열등감 많고 자존심 강하고 고집도 센,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나를 치유하고 고쳐서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박목사님을 사용하셨다. 늘 인정욕구에 목마른 나에게 목사님은 언제나 긍정적으로 대해 주셨다. 목사님은 언제나 나의 장점을 들어 칭찬해 주셨고 나의 가능성을 믿어 주셨다. 목사님에게 있어서 성경에 기록된 일들은 세상에서 다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이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최선을 다해서 인격적으로 대하셨던 목사님,부자든 가난한 이든 장로임직 할 때 는 일정금액을 똑같이 정해서 하게 하심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도 장로 임직을 할 수 있게 하셨고. 권사님들이 임직을 할 땐 목사님의 개인비용을 대서 실크로 한복을 해 입히기도 하셨다. 목사님은 당신이 좋은 일을 하고도 공은 모두 성도들에게 돌리셨다. 당시 나는 아직 신학을 배우지 않았지만 목사님의 삶과 목회를 지켜보면서 그 누구에게서도 배우지 못할 가장 훌륭한 '교회론'을 배웠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오직예수!)과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가 이 세상 그 어떤것 보다도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우리 교회도 세를 들어 있는 개척교회인데도 목사님은 충북 보은에 교회를 개척 한다고 하였다. 목사님은7개 여선교회 회장단을 모아놓고(나는 막내지회인 7지회 회장이었다) 교회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여러분의 일생에 제일 중요한 사건이 결혼식 이라고 한다면, 교회 하나가 세워 지는 것은 여러분이 시집, 장가가는 사건보다 몇 배나 더 중요한 사건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면서 개척하는 교회에 모시는 목사님이 목회에 어려움이 없도록 모든 교회기물을 여선교회가 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그 기물을 할 만한 큰 돈을 다 내 놓으시는 것이다. 외부의 어떤 성도가 보내왔다는 것이다. 결국 돈은 목사님이 내 놓으시고 명분은 여선교회가 한것으로 되었다. 이와 같이 목사님은 매사에 성도들을 앞세워서 사람들에게 성도들이 칭찬을 받게 하셨다. 그랬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사도교회 성도들은 모두 훌륭하다고 소문이 났는데, 심지어 어떤 목사님은 사도교회 출신 집사님이 한 사람만 자기 교회에 있어도 목회할 맛이 날것 같다고 하는 말을 나는 직접 내 귀로 들은적도 있었다.
이처럼 성숙한 인품을 지닌 목사님으로부터 나의 기초신앙이 다져진것은 큰 축복이었다. 선교사로 살아가게 될 나의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희생, 거룩, 사랑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나를 교육시켜 주셨던 것이다. 박 목사님은 비록 50년 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고 가셨지만, 그리고 단 하나의 교회를 개척해 놓고 이 땅을 떠나셨지만 결코 작은 목회를 한 분이 아니었다. 목사님은 예수님의 심장으로 이 땅에서 가장 거룩한 삶을 살다 간 진정한 영적 거인이셨다.[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저작권자 ⓒ 크리스천매거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송혜라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