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포르노(poverty porn)

박창진 사회복지법인 “이웃과 함께” 대표이사

▲ 박창진 / 사회복지학박사, 꿈이 있는 마을 원장

위키피디아에서 정의한 빈곤 포르노(poverty porn)의 뜻은, 빈곤 포르노란 “신문 판매, 기부금 증가, 각종 지원 등에 필요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가난한 이의 상태를 활용하는 출판물, 사진, 동영상 등 모든 형태의 미디어”라고 정의된다.

위키피디아는 이 말이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처지를 즐길 거리(entertaining)로 삼는 형태에 대해 비판하는 용어라고 했다.

1980년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자선 단체들이 생겨났다. 딱히 그 이전부터 있던 자선 단체들도 이때 들어서 왕성한 모금 활동을 하게 됐는데 그것은 아프리카의 오랜 가뭄과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 특히나 어린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거나 팔다리가 끊어지는 장애가 발생해도 그대로 방치되어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들이 알려지면서 구조를 하기 위하여 후원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또렷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기아에 굶주린 어린아이가 부황증이 걸리고 팔다리는 깡마르고 배만 남산처럼 부풀어 오른 모습인데 비쩍 말라 호두만큼 커져 버린 두 눈은 곧 튀어 나올듯한 비아프라 아이의 모습이었다. 비아프라는 나이지리아로부터 독립하려는 전쟁 중 이였지만 끝내 독립은 이루지 못했다. 난 어린 나이였지만 그 모습을 보고 밥을 잘 못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주변에서는 배고파하는 친구를 보면 비아프라냐? 하고 생각 없이 말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는 지경을 넓혀서 동남아 쪽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후원하기 위하여 더욱 왕성해졌는데 처음 아프리카에서는 뼈만 남은 아이들의 모습이나. 먹지 못하여 배가 남산만큼 불룩한 아이들, 젖이 말라붙어 죽어가는 갓난아이를 부둥켜안은 어머니, 맨발로 쓰레기 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거나 수십 킬로의 거리를 물을 길으러 다니는 소녀들의 모습 등이 흔히 사용됐고, 동남아 등지에서는 가난하여 학교에 갈 나이의 아이들이 아버지 엄마를 따라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저야 한다거나, 마을마다 우물을 파주는 일, 한 발 더 나가서 학교나 병원을 세우는 일등까지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화 한 통으로 사랑을 전하는 캠페인이나 프로그램 등이 한때 TV를 통해 방송되곤 했는데 그때마다 등장하는 것은 장애인 부모를 돕고 사는 아동이나, 피치 못한 사유로 조손이 사는 가정들을 최대한 불쌍한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하지만 지금도 불행한 사람들을 도와달라는 수많은 광고, 방송 등은 모두 위에 열거한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가장 선한 생각은 조건 없는 이타주의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과 같은 처지를 가정해 보는데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이다. 소시오패스(Sociopath) 같은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보면 내가 베푼 것처럼 나에게 다시 보상을 받을 가능성에 관계없이 불쌍한 마음이 들고 도와주게 되는 것이다.

가끔 외국에 본부를 둔 이런저런 유수의 모금기관 대표의 연봉이 몇 십억 원이라는 말을 듣거나 내가 기부한 돈의 단 10~15%만이 내가 돕고자 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다소 맥이 빠지기도 하지만 기관을 운영하려면 많은 비용이 소모될 터이고 상상 이상의 연봉을 받는 사람은 또 받는 만큼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모금 운동의 더 큰 문제는 도움을 받게 될 당사자들의 인권 문제이다. 모금을 위해서 시청자의 감성을 최대한 자극해야하기 때문에 비극적인 모습을 더욱 크게 부각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왜곡과 조작이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도움받기로 선정된 아이에게 되도록 때 국물이 흐르고 다 떨어진 누더기 옷을 입히도록 한다든지 또는 식수난을 촬영하러 간 한 방송사는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자 가축들이 마시고 목욕하는 작은 웅덩이에 아이를 데려가서 썩은 물을 길어 마시게 하기도 하고, 심한 피부질환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상처를 촬영하기 위해 붕대를 풀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2013년 구호개발단체들의 모임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가 재정한 “아동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 속에 들어있는 내용이었다.

그런가 하면 도움을 받는 주 대상국인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 경제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의 경우 그곳은 빈곤과 죽음의 땅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라는 곳이 되어버림과 동시에 단골 모델로 나오는 아프리카나 아시아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부정적 편견을 야기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무력한 인간이라는 왜곡된 인상을 씌우게 되고 그런 취급을 받는 그들의 자존감은 사정없이 박탈당하는 것이다.

병들고 헐벗은 사람들을 위한 자선 단체들의 모금은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돕는 대상이 매우 다양해졌다. 초기에는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이 주 대상 이였지만 지금은 학교나 병원 세우기, 우물 파기 등에서 북극곰 살리기나 호랑이 보호, 남극 빙하 보호하기나 해양쓰레기 처리 문제 등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기 위한 전반적인 것들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쟁고아 돕기에서 장애인, 노인, 노숙인, 다문화가정 등이 주 대상이 되었고, 시기적으로는 방학 때면 급식을 먹지 못하는 아동들을 돕자는 후원과 매년 1월이면 보육원에서 보호가 종료되는 아이들에 대한 후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고구려 시대의 진대법으로부터 조선 시대까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 대한 구제 사업은 오늘에 이르러 세계 10위라는 경제 대국이 된 우리나라에서 성인들인 세 모녀가 굶어 죽거나 한강이 얼어붙는 겨울에 담요 한 장 없이 신문지 몇 장에 의지하여 지하도 등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나 되니 진정 가난은 나라도 구할 길이 없는 것 같다.

작년 말쯤 현 정부의 영부인이 외국 순방길에 몸이 아픈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을 가지고 말이 많았다. ‘오드리 햅번의 흉내’라고 조롱하기도 하고 진정성이 있네 없네 하며 그 행동을 폄훼하니까 또 다른 쪽에서는 직전 대통령의 부인이 찍었던 비슷한 사진들이 난무하며 또 이렇거니 저렇거니 들 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역대 어떤 정권에서든지 흔히 있었던 일이다.

정권의 이미지와 세세한 곳까지 챙길 수 없는 대통령을 돕고자 하는 영부인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공인에 대한 비난은 그 사람의 공적 영역에서 저지른 잘못된 행동에 대한 지적이어야 한다. 진영이 다르다고 해서 공인의 모든 일에 시시콜콜 시비를 거는 것은 격조 있는 행위가 되지 못한다. 그때 사태의 발단은 “포르노”라는 말 때문에 시작되었는데 적당한 때에 서로 그만뒀으면 좋을 뻔 했다. 국민들 중 몇몇을 빼고 대다수는 그런 말싸움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런 것을 가지고 네가 옳으니 내가 맞느니 하는 것보다 민생이나 잘 살펴주기만을 목 빼고 바랄뿐이다. 그러니 지금도 끊임없이 벌어지는 눈살 찌푸려지는 진흙탕 싸움을 멈추시라, 그리고 점잖으신 의원들께서는 그런 일에 서로 죽일 듯이 총질하고 힘 빼고 체신 떨구지들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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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