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으로 시집간 피아노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나은혜 목사

몇 주 전의 일이다. 내가 방장으로 있는 단톡방에 카톡이 하나 올라왔다. 서울 신림동에서 피아노 한대가 나왔는데 상태가 꽤 괜찮다는 것이다. 그런데 피아노 임자인 권사님은 이 피아노를 무료로 줄뿐 아니라 가져 가는 사람의 주소지까지 택배요금도 책임져 준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은 가볍고 이동도 편리한 신디사이즈나 디지털 피아노를 많이 사용해서 피아노 전공자라면 몰라도 클래식하고 나무나 호마이카로된 무거운 피아노는 잘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교회의 예배를 위해서 피아노는 여전히 필수적이다.

결혼 하기 전에 은행에 근무했던 나는 경제적 여유가 좀 있었기에 피아노를 가지고 있었다. 검정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호마이카 삼익피아노 였다.  지금부터 40년전 당시만해도 피아노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후 나는 결혼하고 피아노를 혼수로 가져갔다. 그런데 이사 다닐때마다 가장 부담스러운 물건이 바로 피아노였다. 신혼시절 단간방에 살면서도 어떻게든 가지고 다니던 피아노 였지만 끝내는 팔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개척교회가 마침 건축을 하게 되어 건축헌금으로 바치기 위해서였다.

전통적인 피아노는 무거워서 보통 3-4명이 들어야 하고 또 옮기고 나면 반드시 조율을 받아야만 제음이 나기 때문에 피아노는 언제나 이사비용 외에도 추가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선지 요즘에는 일반인들이 선호하는 것은 관리도 쉽고 가볍고 장소 차지를 덜하는 전자식 디지털 피아노이다.

처음에 나는 피아노를 준다는 카톡을 보고도 시큰둥했다. 피아노 사진 한 장도 없이 상태도 잘 모르는데 그냥 피아노라는 것만으로는 누가 가져갈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올려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내가 속해 있는 여러 단톡방에 올려서 홍보를 해 주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필리핀의 선교사님 한분이 선교지에 피아노가 꼭 필요하다며 연락을 해 왔다. 배로 선적하는 회사까지만 보내주면 선적비용은 선교비로 감당해서 가져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 선교사님은 선교지에서 교회를 건축하다가 발바닥을 못에 찔려 파상풍의 위험이 있어 결국 한국에 나와 현재 병원에 입원해 치료중에 있는 K선교사님 이었다.


선교지에 교회건축을 하고 있었으니 교회가 다 완공되면 교회에 놓을 피아노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하여 신림동에 살고있는 익명의 권사님이 내 놓은 피아노는 필리핀까지 시집을 가게 되었다. 피아노는 그날 당장 택배회사에 맡겨져서 선적회사가 있는 오류동으로 배달되었다.

그런데 사실 단톡방은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보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이 같은 물건을 필요로 할 때도 많다. 지난번 내 자동차도 여러 선교사들이 필요하다고 그랬듯이 말이다. 이번에도 또 다른 선교사님이 자신도 피아노가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이미 피아노는 필리핀으로 가기로 낙점이 된 후여서 그 선교사님에게는 아쉬움을 남겼다.

피아노를 가져가기로한 병원에 입원중인 선교사님이 병원에서 카톡으로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선교사님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선교사님 덕분에 사역지에서 피아노가 잘 사용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그 문자를 받고서나는 물자가 핍절한 선교지의 필요가 채워진것이 무척 기뻤다.

이런 선교지의 필요를 채워주는 통로로서 나의 역활은 이미 여러번 있었다. 벌써 몇년 되었지만 탄자니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의 요청으로 접이식 세미나의자 111개를 탄자니아로 보내준 일이 있었다. 지금도 그 의자는 탄자니아 교회에서 잘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또 한번은 서울의 한교회가 사용하던 모든성구와 비품 일체를 내놓았다. 나는 이때도 몽골 선교사님과 연결해 주어서 아무것도 없는 몽골의 한 현지교회로 보내는데 통로가 되었다. 그때는 성구를 내놓은 교회 목사님이 선적비용까지 다 대주어서 몽골까지 보내 주었다. 몽골에서 사역하던 여선교사님이 너무도 기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외에도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장의자를 보내는 일을 연결해 주기도 했고 우리나라 청산도의 한 교회에 교회장의자를 보내는 일에도 통로의 역할을 했다. 아무튼 선교지와 섬교회등에 필요로 했던 물건들을 보내는 일에 나는 이상하게도 ‘통로’가 되곤 하였다. 도움을 받은 어느분인가가 나에게‘축복의통로’라고 불러 주었다.

아마도 나의 은사가 다른 사람의 필요에 민감하고 그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의 필요를 위해 중간 역활을 해주는 일은 중요하다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쌍방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이기에 말이다. 사실 어찌보면 중간 역활은 대단히 귀찮은 일일뿐 아니라 번거로운 일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중재자가 되어 주셨다. 사도바울은 그에게 주어진 복음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중재자의 역활을 도맡아 했다. 때문에 선하고 좋은 일을 위해 중재하고 중개해 주는 통로의 일은 매우 가치 있고 복된 일이다.

아무튼 신림동의 한 가정에서 이제는 피아노를 쳐 주는 사람이 없어 하릴없이 지내던 피아노가 이제 필리핀에 있는 교회로 시집을 갔다. 그 피아노는 지금 얼마나 가슴 설레고 행복할까… 피아노 입장에서 상상만해도 나는 즐거워졌다.  더욱이 피아노는 하나님께 경배하는 일에 쓰임 받게 되었으니 그 격이 더없이 높아진 셈이다. 나는 마치 그 피아노와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처럼 속삭였다. “ 신림동피아노야 너 정말 출세한거야 알았지?  필리핀교회 예배를 위해 더 열심히 아름다운 소리를 내주려무나. 주님께서 너를 쓰신다 하셨으니 말이야“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욥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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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