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나은혜 목사
아침식사를 마친 어머니가 만족한 웃음을 지으신다. 아침에 닭죽을 만들어 드렸더니 맛이 꽤 좋으셨던가 보다. 초복날 중닭 한마리를 6,400원인가를 주고 샀다. 찹쌀과 마른대추 마른인삼도 냉동실에 있기에 꺼내서 두뿌리를 넣고 푹끓였다.
인삼까지 들어 갔으니 분명한 삼계탕이다. 닭한마리로 만든 삼계탕을 세식구가 충분히 먹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남은 닭고기들을 알뜰하게 잘 발라서 두었다가 오늘 아침 어머니에게 닭죽을 만들어 드린 것이다.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올 여름엔 닭죽을 자주 만들어 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엔 우리 부부가 어머니를 돌보는 일로 부산하다. 어머니는 하나에서 열까지 손이 가야 하는 어른 아기시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어머니를 곧바로 화장실에 모시고 가서 틀니세척과 양치, 세수 머리단장까지 해 드리고 옷을 입혀 드린다.
그러는 중에 전화가 걸려온다. 주간보호센터 송영차량 기사님이다. “8시50분까지 모시고 내려 오세요” 남편이 어머니를 모시고 나간다 나는 얼른 먼저 나가서 엘리베이터를 눌러 둔다. 고층이라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미리 눌러 두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내가 집안으로 들어 오려고 하면 로비에 나와 있던 어머니는 나를 붙잡으시며 ”같이 가요.” 한다. 아들이 모시고 내려 가는데도 어머니는 나와 함께 가고 싶어 하시는 것이다. 나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어머니에겐 어느듯 내가 제1의 보호자가 되어 있는 것이구나.
남편과 함께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 어머니에게 나는 머리에 두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애교 스럽게 “어머니 잘 다녀 오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어머니가 아침을 드신 그릇들을 정리하여 설겆이 하고 머그잔에 물두컵을 담아 거실 앞에 놓여있는 탁자에 가져다 놓는다.
어머니를 배웅하고 올라온 남편과 마주 앉아 성경을 읽기 위해서다. 날마다 한시간씩 소리내어 성경을 읽는 것이 이젠 습관이 되고 있다. 무슨 일이든 당연하게 생각이 들면 그건 이미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곧 습관이 된 것이다.
보일듯 말듯이 내리는 이슬비에도 대지의 숲과 풀들이 촉촉히 젖어 들어 생명력을 유지하고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가듯이 날마다 한시간씩 시간을 내어 읽는 성경읽기를 통해서 남편과 나의 영혼에도 봄비처럼 촉촉한 푸른은총이 내려온다.
옛말에 “긴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다. 처음엔 잘하지만 간병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지친다는 뜻일 것이다. 80대 초반에 어머니에게 치매가 발병하고 어머니집 근처에서 돌보아 드리며 살다가 아예 우리 부부가 모시고 살아온 것도 벌써 8년째이다.
서울 신월동의 어머니가 20여년을 사시던 반지하 빌라에 우리 부부가 들어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좀 넓고 쾌적한 집을 구해 김포로 이사를 한지도 벌써 5년 째가 되어간다. 유언까지는 아니라도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소천하시기 전에 어머니에게 당부하셨다는 말을 내가 어긴 것이다.
시아버님은 혹이라도 어머니가 사시는 반지하빌라 보금자리라도 혹 잘못되어 집이 없어지게 될까봐 그러셨는지 모르지만 어머니에게 단단히 당부를 하셨단다. “자넨 어디 가지 말고 꼭 이집에서 살다가 죽어야 해” 라고 말이다.
그 말을 나는 어머니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못된 며느리라서 아버님의 말을 지키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함께 상주하는 그 작은 반지하 빌라는 팔아 치워 버리고 김포의 새 집을 사서 이사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햇빛이 잘드는 쾌적하고 뷰가 시원한 집에서 우리 어머니는 사시게 되었다.
33층인 우리집 거실 소파에 앉아서 어머니는 밖을 내다보며 “아이구 참 시원하고 좋구나” 하신다. 반지하에서 땅에 딱 붙어 살다가 33층 고층으로 이사와서 처음엔 어머니가 적응 못하실가봐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내가 “어머니 집이 너무 높아 안 어지러우세요?”하고 물어 보면 어머니는 “뭐가 높니? 난 높은줄 모르겠다. 시원하고 좋기만 하구나” 하신다. 그뿐인가 자신은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좀 낮은 층의 집이 좋겠다던 남편도 “와~ 저 김포공항 활주로의 불빛좀봐 정말 환상적이네” 한다.
아내의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던가. 내 남편은 내말을 잘 들어준다 그런데 그게 남편이 복을 받는 비결인셈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자는대로 해서 남편이 손해 보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젠 남편도 이 집을 너무 좋아한다.
어느날 거실에서 멀리 계양산과 김포공항의 활주로를 바라보던 남편이 혼잣말처럼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나님 이 집에서 평생 살다가 죽게 해 주세요.” 나는 쿡~ 웃음이 나온다. 어쩌면 돌아가신 아버님과 똑같은 소리를 할까 싶어서 말이다.
2년후면 70세가 되는 남편의 어깨가 점점 아내인 나의 어깨에 기대어짐을 느낀다. 내가 젊었을때 어느 명사가 했던 말 중에 기억나는 귀절이 내 뇌리속에 남아 있다. 그것은 “젊을때는 아내가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살지만 나이들면 남편이 아내의 어깨에 기대어 살아가게 된다”는 말이다.
시간이 흘러 나와 남편의 나이가 60을 넘으면서 나는 그 말이 사실인것을 점점 알게 되었다. 그만큼 집안에서 아내인 나의 역활은 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하기야 아내의 역활이 언제는 안 중요했을까? 아이를 낳아서 장성하도록 키우는 일만 해도 아내없이 될일이었던가?
우리가 한참 일하던 중년시절 해외에서 선교사역을 할때도 아내인 나의 역활은 남편에게 있어서 어느 참모나 어느 조력자 못지 않게 중요했다고 남편은 고백한다. “당신이 없었으면 나는 선교사로 가지도 못했고 선교지에 가서도 선교하지도 못했을거야”라고 말이다.
아무튼 우리 부부는 청년시절 꾸었던 선교사로 사는 꿈을 이루었고 이제 나이들어 고국에 돌아와서는 양가에 네분의 부모님 중에 유일하게 생존하신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있다. 모시는 자체가 효라고 하는 세상이니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부부도 효도를 하는셈인가 모르겠다.
어제 남편이 함께 산책을 하면서 했던말이 기억난다. “내가 당신에게 고마운게 있어”내가 “그게 뭔데요?” 남편은 “응 내가 보고 싶은 책을 매일 주문하다싶이 사 들이는데도 당신 한마디도 뭐라고 안하잖아” 라고 한다. 한마디로 돈도 없는 가정경제 생각은 안하고 남편 자신이 책을 자주 사들이는 것에 대해서 내가 바가지 안 긁어 고맙다는 표현인 것이다.
나는 풋~ 하고 웃음이 나온다. “ㅎㅎ 이제 그거 알았어요? 책 사 보는게 당신의 낙이고 행복인거 아는데 내가 그걸 막으면 안되지요.” 그러고보니 교보문고에서 늘 택배로 배달되어 오는 책들을 받으면서 남편은 내 눈치를 은근슬쩍 보고 있었던가 보았다.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 당신하고 41년째 함께 사는데 내가 당신을 못 바꾼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예요. 당신의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고 받아 들여주는 편이 훨씬 살기에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당신도 나에게 그런것 같던데요? 매사에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아내가 당신 성격에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싶은데 그런데 당신도 나를 늘 지지해 주었잖아요.”
남편이 씩~ 웃으며 대답한다. “하하… 그랬지. 그런데 당신이 하는 일이 처음엔 항상 무모해 보여도 결과적으론 언제나 당신이 선견자였고 옳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래서 이젠 당신이 무슨 일을 벌려도 나는 안심하는 거지” 하고 남편은 차분하게 대답한다.
나이 들어가면 그 누구보다도 소중해 지는 사람이 배우자인것 같다. 오래전 내나이 35살에 나의 친정 어머니가 위암으로 일찍이 소천 하셨다. 그때 나는 속으로 이젠 이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주고 아낌없이 지지해 주던 어머니가 돌아 가셨으니 내가 의지할 사람은 남편밖에 없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었다.
세월이 흘러서 우리 부부가 삼남매를 다 키워 자립시키고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보며 살면서 나는 남편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산책을 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뭐든 마음 놓고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것 그것이 곧 인생의 행복임을 깨닫는다.
날마다 책을 사들여 남편의 서재에 있는 방에 있는 여러개의 책장에 꽂을데가 없어서 교회 사무실로 옮겨가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도 나는 부담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남편은 이젠 은근히 이 책을 물려받을 자녀가 있을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이 책들은 우리 아이들이 보아도 참 좋은 책들인데 애들이 볼려고 할까? “ 나는 시원하게 대답해 준다. “그럼요 분명히 삼남매 중에 한 아이는 아빠가 보시던 그 책을 저에게 물려 주세요. 하는 아이가 있을거예요. “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웃음이 나온다.
속으로 “후후….자기가 살았을 때 책을 보면서 만족하고 행복했으면 됐지 죽은 후 그 책이 어떻게 될 까는 왜 걱정해”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살아서 하는 모든 일들은 나에게만 적용이 될 뿐이다. 우리가 죽고나면 나머지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각대로 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기까지 나도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조금 더 젊었을땐 나의 자녀들을 향한 기대도 남달랐고 이렇게 해 주었으면 저렇게 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많이 가졌었다. 그러나 점점 그것은 나의 기대일 뿐 자녀들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게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상대방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게 되자 오히려 내 마음이 자유하고 즐거워지고 가벼워짐을 느꼈다. 나는 나와 가까운 모든 사람에 대한 과도한 염려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다른 사람의 일은 그 사람이 알아서 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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