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스러운 은퇴후의 재미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나은혜 목사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라도 은퇴를 맞이한다. 그가 하는 일이 자영업이 아닌 한은 아마 그럴것이다. 회사나 어떤 기관이나 소속단체에서 은퇴하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 나의 남편 K선교사도 작년 말에 목사직에서와 선교사직에서 은퇴했다. 만 70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현역인 아내인 나를 돕기 위해서 남편은 우리교회에서 협동목사로 담임목사인 나를 돕고 있다. 물론 남편은 자신의 고유한 사역인 ‘지구촌한국어교육선교회’대표로서 지금도 유학생들이 논문지도와 교정을 의뢰해오면 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계명대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한 큰사위의 석사논문 교정도 봐주었다.

우리 가정은 여러사정상 작년 11월에 대구로 이사를 내려왔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매주 금요일이면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를 타게 되었다. 왜냐하면 김포에 있는 교회의 사역을 위해 올라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 주 다녀야해서 우리는 아예 KTX는 외면하기로 했다.

대신 비용이 KTX에 비해 절반인 무궁화호를 타고 다니기로 했다. 무궁화호는 기차요금이 절반으로 싼편인만큼, 공정하게도 시간은 반대로 꼭 배가 더 걸린다. KTX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2시간 정도가 걸리지만 무궁화호는 꼬박 4시간이 걸리니까 말이다.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식사 한끼는 기차안에서 해결을 해야 했다. 물론 기차에서 내려서 서울역에서 점심을 사 먹을 수도 있지만 점심을 사먹으려면 차라리 KTX를 타는게 더 낫다. 절약하기 위해서 나는 집에서 김밥을 만들어 간다.

사실 전에는 어쩌다 김밥을 쌀때면 참 번거롭게 느껴졌었다. 김밥 재료준비도 그렇고 복잡하다고 느꼈었다. 밖에 나가면 그야말로 ‘김밥천국’인데 김밥은 무조건 사먹는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랬던 내가 대구로 이사를 내려오고 사역을 위해 매주 김포로 올라가게 되면서부터는 귀찮아 하지도 않고 사명감을 가지고 아주 열심히 매주 김밥을 만들고 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김밥을 싸서 떠날 준비를 하자니 분주하기는 하다.

그래서 처음엔 기차를 아슬아슬하게 타기도 했었다. 버스를 타고 대구역까지 도착해서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신호등이
한번 바뀌면 꽤 긴시간 기다려야 한다. 언젠가의 날이다. 기차 떠날 시간이 코앞인데 신호등이 막 빨간색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신호등 바뀔때까지 기다렸다가는 틀림없이 기차는 떠나버리고 말것이 예상되어지는 순간, 나는 순발력을 발휘하여 바로 옆에 있는 지하도로 뛰어 내려 갔다. 그리곤 길 맞은편으로 뛰어 올라와서 대구역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도 또 뛰어올라갔다.

숨은 턱에 차고도 찼지만 그냥 달렸다. 달리고 달려서 이번엔 플랫폼까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날듯이 내려갔다. 기차는 정차했다가 막 떠나려는 찰나였다. 나는 역무원에게 손짓을 하면서 기차를 멈춰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뒤에 또 한사람이 오고 있으니 태우고 가야 한다고 숨차게 설명을 했다.

마침 눈을 들어보니 남편이 에스컬레이터위에 서 있다. 그도 숨차게 뒤따라 온 것이다. 그리하여 아마도 그날 나는 기차를 최소1~2분은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겨우 떠나려는 기차를 붙잡아 타고 안도의 숨을 한참동안 내쉬었던 추억이 대구역에서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있었다.

하여간 그날 금요일 이른 아침에 나는 어김없이 김밥을 쌌다. 밥을 고슬하게 지은후 소금과 참기름 깨를 넣고 비빈후에 김에 밥을 펴서 깔은후, 단무지, 우엉, 게맛살, 햄, 당근, 달걀을 차례로 놓고 김발로 꼭꼭 눌러가면서 싼다.


다 말아진 김밥에 참기름을 반짝반짝 윤이나게 바른후 통깨를 뿌려준다. 도시락통에 김밥을 잘라서 예쁘게 담고 두개의 반찬통 가운데 한개에 찬통에는 김밥을 잘라낸 양끝 꼭다리를 담고 다른 하나의 반찬통엔 노란 단무지를 담는다.

보통때는 아침 8시 30분경 기차를 타기 때문에 김밥은 점심용이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오늘 만든 김밥은 저녁식사용이다. 오후 4:11분 기차여서 저녁식사 시간이 서울역에 도착하기전 꼭 중간쯤이어서 저녁으로 김밥을 준비해 가는것이다.

김밥 먹을때 목이 메이지 않도록 보온병엔 따뜻한 물도 준비했고 식후 디저트로 마실 냉커피와 레몬쥬스도 준비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대구역에 도착해서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탄 지 한시간이 좀 지났을까 했는데 벌써 배가 고팠다.

아마도 점심을 일찍 먹은 탓일 것이다. 시계를 보니 아직 6시도 되지 않았지만 좀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남편 K선교사에게 김밥을 먹자고 했더니 그러자고 한다. 김밥이 가지런히 들어있는 도시락통을 열어서 젓가락을 마주 비비던 남편이 나를 보고 불쑥 싱거운 한마디를 한다.

“누가 나에게 은퇴 후의 재미가 기도하는것 외에 또 뭐냐고 묻는다면 말이야” 나는 흥미가 생겨서 그말을 얼른 받았다. “묻는다면요?” 나는 속으로 지금도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못 참고 사들이는 남편을 잘 알기 때문에 ‘책보는 재미’라고 대답을 할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되물은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대구로 이사온 후부터 남편은 아침 7시가 좀 넘으면 우리집에서 10분 거리에 사는 큰딸네집에 가서 초등학교에 등교하는 손녀 로아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을 일삼았기 때문에 손녀를 등교시켜 주는 재미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은 정말 내가 상상하지 않았던 싱거운 한마디를 한다. “음… 누가 나에게 은퇴후 재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말이지. 그건 매 주 김밥 먹는 재미야 ” 그가 김밥 한개를 입에 쏙하고 넣으면서 하는 말이다.

우린 서로 마주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며칠전만해도 매주 완행기차를 타고 서울을 오가는것이 힘들다고 투덜댔던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반전의 말을 하다니 은퇴후 재미가 매 주 기차안에서 김밥을 먹는것이라니… 김밥이 맛있다고 나에게 고마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도 몰랐다.

하긴 벌써 대구로 이사하고 주말엔 사역하러 김포를 오르내린지가 벌써 반년이 넘었으니 매 주 내가 싼 김밥을 기차 안에서 남편이 먹어 준지도 반년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늘상 먹었던 김밥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할뿐 아니라 매우 가치있게 표현해 줌으로서 나를 감동시키다니 눈물겹다는말을 이런때 쓰는것이 아닐까.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가 노후문제로 많이 쏠리고 있다. 창의적이고 유능한 사람들은 은퇴에 관계없이 자신의 일을 하기도 한다. 은퇴전에 했던 같은 일은 아닐지라도 그냥 놀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회참여가 되기도 하고 수입도 생기는 생산적인 일을 계속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어쨌거나 공식 직장이나 직업에서 은퇴후의 삶이 길어지는 만큼 은퇴후는 더욱 의미 있고 재미있게 사는게 좋다. 내남편 K선교사처럼 매주 기차안에서 김밥을 먹는것조차 ‘은퇴 후의 재미’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인생은 잠시 이세상에서의 소풍이다. 그리고 소풍엔 언제나 김밥이 제격이다. 우리 어린시절에 김밥먹는 재미로 소풍을 갔듯이 우리인생의 소풍에서 나에게 가장 일상적인 작은 일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재미를 느낄수 있다면 그게 곧 인생의 행복이지 않겠는가.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시 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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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