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속삭이는 음식, 굴

바다의 우유

찬바람 부는 계절에 굴이 맛있다는 것쯤이야 익히 아는바, 석화(石花)를 구입하여 손질한다. 30여 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전남 진도 바다를 앞마당처럼 껴안은 집에 짐을 풀었다. 동네 아낙들이 갯바위에서 굴을 따고 있었다. 나도 굴을 따겠다고 옆집 할머니한테 조새를 빌렸다. 요령을 모르니 애꿎은 석화만 쪼아댈밖에. 하는 수없이 아낙이 딴 굴 한 바가지를 사 왔다. 자잘한 알맹이가 어찌나 많은지 두고두고 며칠을 먹었다. 석화를 찌거나 구우면 입을 벌리지만, 싱싱한 석화 입을 벌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


굴은 철, 요오드, 아연 등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하다. 영양 성분이 우수하여 ‘바다의 우유’라고 부른다. ‘동의보감’에도 ‘굴은 몸을 건강하게 하고 살결을 곱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니 바다에서 나는 음식 중에서 제일’이라고 하였다. 한자로는 모려(牡蠣)·석화(石花)·여합(蠣蛤) 등으로 표기한다.

석화(石花)라고 부르는 것은 바위에 오밀조밀 붙어있는 굴 패각이 마치 꽃이 핀 것 같다 하여 그런 명칭을 갖게 되었다. 껍질 채로 있는 것은 석화, 껍질을 깐 알맹이가 굴인 것이다. 굴은 달고 짜고 평(平)한 맛과 성질을 가졌다. 입이 쓰고 피로하면 마음에 화기가 있어 혈과 진액을 마르게 한다. 이때 음과 혈을 보하는 음식으로 굴이 제격이다. 소화도 잘되고 식감도 부드럽다.

현재는 통영 굴이 유명하지만, 예전에는 서해안 남양 굴을 으뜸으로 쳤다. 조선 시대 남양 도호부는 경기도 화성 일대였다. 이곳 굴이 어찌나 맛있는지 부임하는 원님마다 굴을 씹지도 않고 훌훌 마셨다. 음식을 허겁지겁 먹거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을 해치울 때 ‘남양 원님 굴회 마시듯 한다’ 속담이 있었을 정도다.

서양에서 유일하게 날것으로 먹는 해산물로 굴이 유일했다. ‘삼총사’의 작가 뒤마는 ‘진정한 미식가는 생굴을 먹으며 바다의 맛을 그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폴레옹, 클레오파트라도 굴을 즐겨 먹었고, 또 한 사람을 빼놓을 수 없는데 바로 카사노바이다. 서양 최고의 플레이보이로 꼽히는 카사노바는 매일 아침 생굴을 먹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가끔 석화를 만지다 숙연해진다. 굴 패각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자신의 뼈를 깎아 아픔을 삭인다. 고통의 승화로 얻어진 진주는 그래서 눈물이고 어머니의 마음인 것이다. 故한인현 선생이 어느 해변 마을의 교사로 있을 때 쓴 ‘섬 집 아기’를 읊으면 핑그르르 눈물이 돈다. 엄마와 아기의 애틋함이 펼쳐진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어쨌거나 굴이 맛있는 계절이다. 생굴에 레몬즙을 뿌리면 살균작용과 더불어 상큼함을 더한다. 미나리와 무를 같이 먹어도 좋고, 부추를 곁들이면 굴의 찬 성질을 부추의 따뜻한 성질이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초고추장만이 아니라 발사믹소스나 칠리소스를 곁들여도 된다. 초장이 굴의 비린 맛을 잡아준다면 레몬이나 발사믹은 굴의 향과 맛을 높여준다.

고기 잡는 어부집 딸은 피부가 검고, 굴 따는 어부집 딸은 피부가 하얗다고 하니 여성들은 굴을 많이 먹을 일이다. 굴을 먹으면 사랑하고 싶어진다니 남성들도 제철 굴을 많이 먹으면 좋을 것이다.


▲ 사진과 글: 노정희 작가

      동그라미약선연구원장 강사, 푸드스토리텔러, 수필가,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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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