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문학: 명절


•명절증후군과 위로

나는 올해 그 어느때 보다도 즐거운 추석명절을 보냈다. 특히 매번 추석때마다 혼자오던 아들이 이번엔 결혼하여 예쁜 며느리와 함께 와서 추석을 보내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기쁜일이 어디 있을까. 결혼하라고 근 10년간 내가 채근하던 아들이 드디어 결혼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즐거운 추석명절을 보냈다고 해서 명절이 지난 후에도 줄곧 즐거웠던것만은 아니다. 내마음의 기쁨과는 별개로 내육신은 그렇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명절증후군이 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추석명절을 쇠기 전부터 오른팔이 아프기 시작했었다. 추석명절을 맞기 위한 준비로 알타리김치와 열무김치를 담갔는데 김치 담그는 것이 무리가 되었었나 보다. 김치를 담그려면 아무래도 팔을 많이 쓰게 되니까 말이다.

가족들에게 팔 아프다는 내색도 못하고 추석 명절은 잘 지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명절엔 가족들의 도움이 많았다는 것이다. 음식은 내가 준비 하지만 남편이 열심히 설겆이를 해 주었다. 그리고 작은딸이 열심히 청소를 해 주었다.

그렇지만 추석명절 기간이 지나고 가족들이 각자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고 난 후 나에게 남은 명절 증후군은 팔에 통증을 가져왔다. 좀 쉬면 낫겠지 하면서 나는 병원에는 가지 않고 버텼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여전히 팔이 아파서 조금 무게가 나가는 후라이팬만 들어도 팔에 통증이 왔다. 나는 더이상 참아서는 않되겠다 싶어서 정형외과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었다. 의사는 팔에 석회석이 끼었다고 하면서 증상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것 같다고 하였다.

물리치료와 먹는 약을 처방 받았다. 확실히 약을 쓰고 물리치료를 받으니 팔은 많이 좋아졌다. 팔의 통증이 덜해진 것이다. 그런데 오른팔은 명절증후군으로 팔을 많이 써서 아픈 것이지만 왼쪽 팔뚝에도 오래전에 뾰루지가 생겨서 아팠다.

이번엔 집근처 피부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주사를 두 번 놓아보고 뾰루지가 사라지지 않으면 대학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주사를 맞아도 뾰루지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 부위를 누르면 아팠다. 피부과 원장님이 대학병원 진료의뢰서를 발급해 주었다.

남편이 인터넷으로 이대목동병원 피부과에 예약을 해 주었다. 그래서 명절 증후군으로 무리가 되어 아픈 오른팔은 동네 정형외과에서 치료를 받았고, 왼팔의 뾰루지는 조직검사를 받기 위해 대학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대학병원에서는 뾰루지의 피부를 떼어내어 조직검사를 의뢰함과 동시에 뾰루지를 떼어내는 시술을 하고 세바늘을 꿰매어 주었다. 왼팔에 마취를 하고 시술을 하니 전혀 아픈줄도 모르고 다 마쳤다.

마취의술이 발전하지 못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만약 마취가 안된 상태에서 생살을 떼어내고 꿰매었다면 얼마나 아팠을 것인가? 생각하니 나는 병원 베드에 누워 피부과 전공의 의사에게 팔을 맡기고도 마음에 감사가 터져 나왔다.

문득 20여년전 선교지에서 아들이 농구를 하다가 다쳐서 눈 주위가 찢어졌던 생각이 났다. 선교지의 병원에 갔었는데 의사는 마취를 하지 않고 아들의 찢어진 눈위의 살을 꿰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아들이 아픔을 참느라고 두주먹을 움켜쥐고 용을 쓰며 아픔을 참아내던 안쓰러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나는 의술이 발달한 한국에서 아픔을 아픔으로 느끼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며 시술을 마쳤다.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지하철 신목동역까지 1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걸어야 했다. 그런데 보도에는 보도블럭을 새로 까는 작업을 한참 하고 있어서 차도 말고는 길이 없어서 걸어서 가기가 매우 불편했다.

남편과 나는 적지 않은 거리를 어떻게 가야 하나 하고 잠간동안 고민했다. 그렇다고 택시를 탈만한 거리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도로길옆 약간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가면 수로 옆으로 산책코스가 있었던 기억이 났다.

우리는 계단을 올라갔다. 아~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은 완전히 별천지였다. 중장비로 소음을 내며 공사를 하던 길과는 완전히 대치된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냇가에 물은 많지 않지만 수로옆으로 길을 만들어 산책을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갈대와 이름 모를 하얀색과 노랑색의 야생화들이 곱게 피어 있고 한얀 나비가 몇마리 날아 다니고 있었다. 복잡한 차도와 도시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자연 풍경이 바로 옆에 펼쳐져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남편과 나는 지하철역까지 약 1킬로미터 거리를 잠시 걸어가면 되는 길이지만 뜻밖의 한적하고 기분 좋은 길을 걸을 수 있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들꽃과 갈대가 피어 있는 길을 걸으며 우리는 데이트나 하자고 기분을 냈다.

내가 박정현과 최정훈이 듀엣으로 부른,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죽음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스태리 스태리 나잇( Starry Starry Night)으로 시작하는 ‘VINCENT ‘라는 노래를 핸드폰에서 찾아서 남편에게 들려 주었다.

아픈 사람들로 넘쳐나는 대학병원에서 나역시 문제가 있어서 팔을 마취하고 피부조직검사를 하고 세바늘을 꿰매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런데 파란 하늘과 갈대와 들꽃들과 나비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가을길을 걷게 되다니…

문득 마음속으로 행복감이 밀려왔다. 본시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던가? 힘들고 쓰디쓴 고통의 나날이 있기도 하지만, 후에 예상치 못했던 기쁘고 즐거운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혹한의 겨울을 지낸 후에 따뜻한 봄날이 찾아 오듯이, 마치 산이 있으면 골이 있듯이,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듯이 우리 인생에도 아프고 힘든 일을 겪은 후엔 또 잔잔한 위로가 은혜로 주어져 살맛이 나는 것이다.

대부분 병원은 육신의 아픔때문에 신음과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하고 소독내가 나는 삭막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은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음악을 절로 듣고 싶어지는 분위기에서 진정 하나님의 위로가 잔잔하게 느껴졌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 1:3)


글/사진: 나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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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