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주리 3·1 만세운동 주도 김흥열 지사 국립묘지에 모신다

일가족 5인 유해와 함께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7묘역 안장

경기도 화성에서 3·1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해 순국한 김흥열 지사 일가 유해 6위를 105년 만에 국립묘지로 모신다.


정부가 경기 화성 고주리 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일제에 죽임을 당한 김흥열 일가 유해 6위를 105년 만에 국립묘지로 모신다.


국가보훈부는 1919년 경기도 화성 발안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한 뒤 화성 고주리에서 일제에 의해 순국한 독립유공자 김흥열 지사(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일가 6위의 유해를 국립묘지로 이장한다고 7일 밝혔다.


고주리 순국선열 합동묘역. (사진=국가보훈부)

국립묘지 이장 순국선열은 김흥열 지사를 비롯해 동생 김성열, 김세열, 조카 김흥복, 김주남, 김주업 지사로 모두 천도교인이다.


김흥열 지사는 1919년 4월 5일 향남면 발안 장날을 이용해 안상용, 안진순, 안봉순, 김덕용, 강태성 등과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했으며, 동생과 조카 등 온 가족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만세운동에는 1000여 명이 참여했으며, 일본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일본인 순사부장이 돌에 맞아 사망한 것을 계기로 일본 경찰과 헌병대가 대량으로 증파된 뒤 보복적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군중을 닥치는 대로 체포하고 연행해 고문했다.


특히 4월 15일 일본군 20여 명이 제암리에 도착한 뒤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을 제암리 교회에 모이게 해 출입문과 창문을 잠근 채 무차별로 집중사격했다.


이에 23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는데, 일본군은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교회에 불을 질렀다.


일제 군경은 제암리 사건 뒤 근처의 고주리로 이동해 김주업의 결혼식을 위해 모였던 김흥열 등 일가족 6명을 칼로 죽이고 시체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통정대부(정3품)를 지냈던 김흥열의 아버지와 김주업의 새 신부까지 죽게 되는 등 멸문의 위기에 처했다.


고주리 주민들은 불태워진 김흥열 일가 6위의 유해를 수습해 현재 위치한 팔탄면 공설묘지에 안장했으며, 그동안 유족과 천도교 교인들이 중심이 돼 해마다 4월 15일 추모제를 거행해 왔다.


보훈부는 지난 3월 유족대표(장손 김연목)와 협의해 국립묘지 이장을 결정했다.


이는 그동안 국립묘지 이장에 대한 유족 간 의견 일치가 되지 않았으나 합동 묘소를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협의하던 중 유족이 합의해 성사됐다.


이에 보훈부는 이날 오전 묘소를 개장해 유골을 수습한 뒤 함백산 메모리얼 파크에서 화장한 다음 유해를 임시 안치할 예정이다.


보훈부와 화성시는 오는 8일과 9일 화성시 독립운동기념관 내에 고주리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 제단을 설치하고 시민들이 헌화와 추모의 글을 남길 수 있도록 추모 기간을 운영한다.


추모가 끝나면 10일 화성시 독립운동기념관에서 보훈부 장관, 화성시장, 광복회원, 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주리 순국선열 합동 봉송식을 거행한다.


봉송식 뒤 영현 6위를 국방부 의장병이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운구해 독립유공자 제7묘역에 안장할 예정이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고주리 여섯 선열의 희생과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그 숭고한 정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해 늦었지만 유족들의 뜻에 따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모실 수 있게 되어 뜻깊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고주리 순국선열들이 민족의 성역인 국립묘지에서 영면에 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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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봉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