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야인시대’의 막내 실제 명동 신상사파 행동대장 김 철 목사

1965년~1983년 실제 현역에서 활동하신 무풍지대와 같은 삶을 산 김 철 목사그의 특별한 삶과 그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듣기 위해 본지가 만나보았다.


▲ 명동신상사파 신상현 두목과 김 철목사 

Q.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1965년~1983년까지 드라마 “야인시대”의 막내 실제 현역에서 활동했던 명동 신상사파 행동대장 김 철입니다.

Q. 남다른 유년시절을 겪으신 것 같아요. 이야기해주세요.

A. 저는 외교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어요. 그런데 저희 부모님은 제가 3살 때 헤어지셨어요. 이혼의 영향으로 친할머니께 맡겨져서 양육됐어요. 그때부터 친할머니와 함께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여성을 많이 사랑하셨어요.(웃음) 저는 어머니가 총 3분이셨어요. (웃음)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 저를 키워주신 어머니 두 분...이렇게 3분이셨죠.
가정에서도 적응을 못 해서 일찍 가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0대 시절을 보냈어요.
환경이 좋지 않다 보니 학교성적이나 모든 것이 엉망이었지요.



그러던 중 3번째 어머니의 권유로 다시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집으로 다시 돌아가 생활할 때 어머니 남동생분(외삼촌)이 계셨는데 제가 미웠나 봐요. 저를 많이 때리셨어요. 그리고 이복형제들에게도 치이고 적응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3번째 어머니 식구들은 모두 불교셨어요. 매주 교회 나갈 때마다 모든 식구가 저를 힘들게 했어요. 정말 지옥 같았어요.
하나님께 늘 기도했어요. “하나님 이 집에서 나가게 해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부잣집도 싫고 모든 식구가 싫어요! 우리 집 망하게 해주세요! 이 집에서 아무도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시간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그 당시 아버지께서 불광동에 집을 20채를 건축하셨어요. 선 분양을 해서 입주를 했는데 건물이 반파(반쯤 부서진 상태)됐어요. 임야를 허가를 받지 않고 나무를 다 베고 계간해서 건물을 만드셨나 봐요 아버지의 이름만 믿고 건축하시는 분이.... .. 결국, 무허가 건물이 된 거죠...... 나라에서 다시 원상복귀를 해놔야 한다는 법적 통보를 받았어요. 건물사건으로 인해서 집이 정말 제 기도 대로 망했어요. (웃음)
아버지 사업 실패 후 3번째 어머니는 이복동생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시고 저와 아버지 그때 일하시던 도우미 아주머니와 함께 월세를 주고 작은집으로 이사해서 생활하게 되었어요. 제가 집으로 다시 들어간 후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예요. 제가 함께 산 3개월 만에 집안이 폭삭 망했으니 아버지는 저를 “재수 없는 자식”으로 여기셔서 구타를 일삼으셨어요. 망하기 전 함께 살던 삼촌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아버지였어요. 반복되는 아버지의 구타로 인해서 매일 밤 집 뒤에 있는 산에 올라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집에서 나가게 해주세요!” 그 후 집에서 또다시 가출하게 됐습니다. 가출 후 고모께서 저를 돌봐 주셨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키가 170cm에 몸무게 80kg이었어요. 일반 학생들보다 체격이 좋았기 때문에 싸움판에 쉽게 가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웃음)


▲ 명동 신상사파 정기 모임 

Q. 그 당시 명동 신상사파에 입문하게 되신 동기가 있으실 거 같은데 동기와 일화를 이야기해주세요.

A. 저는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항상 살려주셨던 것 같아요. 1965년도 말 15~16세 제가 덩치가 좋아서 20살로 속이고 다녔어요. 명동에서 신상사파라는 조직에 입문하게 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이 세계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명동에서 내가 ‘두목’이 되겠다! 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어요. 4년 만에 제가 명동에서 그 당시 유명했던 “꽃 다방”의 지배인이 되었습니다. 조직세계가 좋아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입문하게 된 거죠.
세력 확장 동안 35명의 제 부하를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 다른 일반 다방 커피 값은 50원이었는데 저희 다방 커피값은 400원이었어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통행금지에 걸리면 집으로 귀가하지 못한 사람들이 통행금지 해제가 될 때 까지 저희 다방에 있었어요. 돈을 좀 많이 벌었습니다.
1971년도 겨울에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명동 파출소 뒤에 건물에서 배우 남궁원 씨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제 밑에 부하 LA 마피아였던 하○○이 밤에 남궁원 씨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30여 명의 건장한 청년들(철조망클럽-깡패집단)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발견했어요. 회칼, 체인, 야구방망이, 쇠파이프 무기들을 들고 있었습니다.
소름이 끼치더군요. 바로 저 밑에 동생인 하○○를 구해야 하니까요! 순간 시편 50편 15절 말씀이 떠오르더군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조직세계에 몸담고 있었지만, 주일은 지켰으니까요. 마음속으로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한 후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죠. 상황이 급박했어요. 양복 상의를 벗어 던지고 레스토랑 밖으로 나와서 머리로는 생각하고 있었어요.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쓸 만한 무기가 없었어요. 그 당시 김자옥 씨와 이상열(가수) 스캔들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웃음) 옛날에는 가게 문 닫을 때 자물쇠 역할을 했던 철근이 있었어요. 철근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긴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휘둘렀어요. 가장 먼저 상대편 우두머리를 먼저 공격한 다음 30여 명을 모조리 처리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셨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피가 낭자하고 난리였습니다. 모두 도망갔어요.
그 당시 신문에 큰 기사로 보도됐습니다. 당대 날렸던 모든 조직의 보스들도 결단코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 故 김태촌 집사와 함께

Q.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신 동기가 궁금한데 말씀해 주세요.

A. 1981년에 (구이동 영화사 조계종, 태고종사건)의 해결사 일을 했습니다.
태고종 소속의 대처승 한 분이 조계종 소속의 영화사에 자리를 잡고 주지 스님을 했어요.
조계종에서 시비를 걸어온거에요. ‘내 절 내놔!’ 대처승은 ‘못 주지, 주나 봐라!’ 그렇게 해서
조계종에서 임진왜란 때 승병 모으듯이 무승들이 몰려와 목검에 죽창을 들고 영화사 담벼락을 찔러 대기 시작했어요. 싸움을 걸어오자 대처승은 건달들을 용병으로 모집해서 맞섰죠.
결국 경찰이 개입해서 조계종의 손을 들어줘서 대처승은 지금의 화양사를 차리게 된 겁니다.
이때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저를 도와주시고 살려주셨지요. (웃음)
동생들 거느리고 다방과 업소를 관리하고 수금하는 것이 제 업무였죠. 1969년 형무소를 10개월 동안 징역을 살다 왔어요. 마음잡으려고 군대를 갔는데 상관을 폭행하고 탈영을 해서 3년 6개월을 형을 더 살았습니다.
형무소에서 생활하면서 어린 시절 친할머니께서 저를 위해서 항상 울면서 기도하시던 모습이 계속 떠올랐어요. 그러면서 주먹세계에 대한 회의가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주먹세계를 정리하고 싶었어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어요. 방탕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게 되었습니다.


▲신현균목사와 함께

Q. 목사안수를 받으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강남구청에 신현균 목사님께서 오셨어요. 신목사님께서 저에게 다가오시더니 ‘신학교를 보내 줄 테니 공부를 하십시오. 우리 교회 나오십시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후에 신현균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방배동 성민교회에 나가서 간증한 후 너무 창피해서 남산의 팔각정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했습니다. 주먹세계를 정리하고 하나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라고 고백했죠. 신현균 목사님을 통해서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된 겁니다.

Q. 전도를 많이 하시고 뜨겁다고 들었어요. 전도의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주먹세계를 정리하고 신학교를 다니면서 노방전도를 하기 시작했어요.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 앉으나 서나 예수님께 감사해서 항상 여기저기 다니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죄 많은 저를 용서해 주시고 저를 구원해주신 그분을 전해야 된다는 강한 ‘사명의식’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한국교회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노방전도 쉽지 않습니다. 기도를 통해 영적으로 무장되어야 해요. 전도는 영적 싸움입니다.
담대해야 해요. (사도행전 1장 8절“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요즈음 교회 특히 대형 교회(유명한?) 목사님들 솔직히 전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영혼 구원’ 받아 구원받지 못한 많은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겁니다. 그러나 초심을 잃고 처음에 아무것도 없을 때는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순수한 마음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됩니다. 유명하면 뭐합니까? 우리는 다 똑같은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결국에 아무것도 아니란 겁니다. 중요한 목적을 잊어버리고 엉뚱한데 넋이 나가 있습니다. 개탄할 일이죠. 우리나라에도 구원할 영혼들이 너무 많은데 물론 선교 중요합니다. 해외에만 나가서 선교하려고 합니다. 타국에서 전도하는 것만이 전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 나라 내 민족에게 전도하는 것 또한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초심을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시대적 분별을 통해서 다시 도약하는 한국교회와 성도님들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 꿈이실현되는교회 창립예배  강단에서의 김 철 목사

Q. 인터뷰 어떠셨나요?

A. 마음속에 껍데기 신앙을 버리고 소명과 사명의식 그리고 말씀을 가지고 진실 된
믿음을 지키는 시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순교자의 마음을 가지고 ‘영혼 구원’을 위해서 변화되고 힘쓰는 모든 크리스천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지금까지 부족한 제 이야기를 함께 해주신 구독MM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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